지난해 9월 미국 환경청이 폭스바겐의 디젤자동차 배출가스 조작을 밝혀낸 뒤 폭스바겐은 각국에서 결함을 시정하는 리콜을 하고 있다. 대상 차종 1100만여대 가운데 75%인 850만여대의 리콜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직 한 대도 결함을 고치지 못했다. 조작 차량 12만여대가 여전히 규정 이상의 배출가스를 내뿜으며 달리고 있다. 한국 환경부가 규정에도 없는 ‘임의설정(조작)’을 인정하라며 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을 두 번이나 반려했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과잉대응…진전 없는 폭스바겐 리콜
◆없는 규정에 집착하는 환경부

환경부는 지난 10월5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제출한 3차 리콜 계획을 접수했다. 앞서 두 번 반려한 사유인 ‘임의설정’에 대해선 “폭스바겐에 ‘일정 기간 내에 임의설정을 인정하는 회신이 없으면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공문을 보냈고 폭스바겐이 답변을 안 했기 때문에 임의설정을 인정한 것”이라며 넘어갔다.

환경부는 당시 ‘5~6주 검증을 거쳐 리콜 승인 여부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로 7주가 되지만 아직 공식 발표는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연비 저하 여부 등의 시험을 아직 마치지 못했고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와 협의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환경부가 임의설정에 집착한 나머지 리콜 시기가 비정상적으로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한국 유럽 등의 규정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미국에서처럼 임의설정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 무리수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은 폭스바겐 사례처럼 배출가스·연비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차량을 조작(임의설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2004년부터 두고 있다. 이 때문에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임의설정을 인정했고 차량 교체 등을 포함해 18조원 규모의 보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임의설정 규정이 환경부 고시인 ‘제작자동차 인증 및 검사 방법과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통해 2012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문제 차량은 이 규정이 발효되기 전인 2007년 12월12일부터 2011년 12월30일까지 환경부에서 인증을 받았다.

◆“환경부 비판 잠재우려 여론몰이”

환경부는 리콜에 따른 출력·연비 저하 가능성을 명확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을 리콜 계획 반려와 승인 지체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미국과 한국 유럽의 배출가스 기준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설명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미국의 디젤차 배출가스 기준은 1㎞ 주행 시 질소산화물 0.031g 이하다. 한국과 유럽이 2014년 9월부터 시행한 유로6(0.08g/㎞)보다 2.5배, 이전 기준인 유로5(0.18g/㎞)보다는 6배 엄격하다.

이 때문에 독일 회사인 폭스바겐은 유로5 기준으로 개발한 엔진으로 미국 기준을 맞추기 위해 조작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다. 이 소프트웨어를 제거하면 기준을 맞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에선 차량 교환 등 높은 수준의 보상을 한다.

이에 비해 유로5 기준은 소프트웨어 제거 또는 간단한 수리로 맞출 수 있다는 게 폭스바겐 측 설명이다. 독일 정부는 이런 이유에서 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을 승인했다. 싱가포르 인도 중국 브라질 등에서도 리콜이 진행 중이다.

한국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임의설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버티자 ‘인증 취소’라는 초강수를 뒀다. 8월 배출가스·소음 성적서 위조를 이유로 32개 차종의 인증을 취소하고 판매를 정지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만 대규모로 인증을 취소한 것은 올해 미세먼지와 가습기 살균제 등 이슈로 곤경에 처한 환경부가 여론을 돌리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현우/오형주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