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탠퍼드와 연세대
3년 전 스탠퍼드대에서 아시아 대학의 경쟁력을 주제로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도 국제적인 교육 허브를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고, 그 대표적 사례가 세계 명문과 학생 유치를 위해 경쟁하고 있는 연세대의 언더우드국제대학(UIC)이라는 자랑도 곁들였다.

강연이 끝나자 어느 교수가 질문했다. 연세대가 어떻게 스탠퍼드와 경쟁하겠느냐, 너무 과욕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그 지적이 맞는 얘기다. 그렇지만 한국 대학의 잠재력을 다른 각도에서 평가해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몇 가지 사실을 역설했다.

우선 대학의 수월성은 연구 성과와 학생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우리는 학생의 우수성은 물론 교수의 연구 업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라서 전체 논문의 3분의 1 정도는 아예 국제무대에서 제외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평가방식으로 한국 대학의 국제적 위상은 실제보다 평가절하돼 있다.

대학의 경쟁력은 재정여건에 좌우되는데 스탠퍼드의 등록금은 연세대의 5배나 된다. 1885년 스탠퍼드와 같은 해에 설립된 연세대가 130여년 동안 그런 등록금 규모를 투자했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스탠퍼드는 24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며, 교육과 연구에 재투자하고 있다. 반면 연세대는 용도가 한정된 5000억여원의 적립금마저도 당장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등록금 상한제법이 있는가 하면, 반값 등록금이 대학정책의 핵심이 돼 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스탠퍼드는 우수한 학생과 소외계층은 물론 명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다. 반면 연세대는 단 한 명도 자율적으로 뽑을 수 없는 경직된 규제에 묶여 있다.

한국 대학들은 지금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학령인구 급감과 등록금 동결로 구조적 압박이 심각하고, 학생 교수 등 저마다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요구는 거세지만 책임을 다하려는 주인의식은 부족하기만 하다. 총장 선임과 이사회 구성 등 대학의 관리체계를 규정하는 거버넌스마저도 여전히 취약한 실정이다.

이런 여건에서 성장한 한국 대학들이 대견하다고도 할 수 있다. 대학이 미래를 선도하려면 끊임없는 내부 혁신과 개방, 거버넌스의 선진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세계적 명문이 10개쯤 있어야 아시아를 주도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도 확산돼야 한다. 물론 이 믿음을 설파해 나가는 것도 대학의 몫이다. 스탠퍼드는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갑영 < 전 연세대 총장 jeongky@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