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날리고 4000원 손에 쥔 현대차 노조
모두가 패자(敗者)였다. 노동조합원들이 손에 쥘 돈은 1인당 300만원가량 쪼그라들었다. 회사는 3조원 넘는 돈을 날렸다. 수많은 협력업체는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지역경제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수출 급감으로 국가경제마저 휘청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이 남긴 상처다. ‘과연 누구를 위한 파업이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14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한다. 노사가 지난 12일 가까스로 도출한 2차 잠정합의안을 놓고서다. 노사는 기본급(월급)을 7만2000원 인상하고 성과급 및 격려금으로 기본급의 350%+330만원, 전통시장 상품권 50만원, 주식 10주를 지급하는 안에 합의했다. 지난 8월 말 부결된 1차 합의안과 비교하면 기본급이 기존(6만8000원·개인연금 1만원 포함)보다 4000원 많고, 전통시장 상품권은 20만원에서 30만원 늘어났다.

2차 잠정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현대차 노조는 지난 5개월간 24차례 파업했다. 주말 특근도 12차례 거부했다.
3조 날리고 4000원 손에 쥔 현대차 노조
대가는 혹독했다. 노조원들은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 노조는 기본급 4000원을 올리기 위해 파업을 벌였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노조 집행부에 이끌려 거리로 나온 조합원들이 파업과 특근 거부로 받지 못하는 임금 손실은 사상 최대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파업과 특근 거부에 따른 노조 조합원의 임금 손실은 1인당 200만~300만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서다.

생산현장에서는 2차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앞두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조합원은 “조합원만 피멍 든 투쟁이었다”며 “역대 최다 파업으로 돌아온 건 역대 최대 임금 손실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노동조합 파업으로 천문학적인 매출 손실을 보게 됐다. 노조 파업과 특근 거부로 현대차가 생산하지 못한 자동차 수는 14만2381대에 달한다. 매출 손실액은 3조113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차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3조1042억원)과 맞먹는다.

협력업체들은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 파업 이후 1차 협력업체 348곳의 손실액은 약 1조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차 2·3차 협력사는 5000개가 넘는다. 협력사 전체로 따지면 매출 손실이 4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자동차 부품회사 대표는 “자금 흐름이 좋지 못한 일부 협력사가 자금난으로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 주변 지역경제는 피멍이 들었다. 현대차 노조 파업에 따른 협력사 경영난에다 철도노조, 화물연대 등의 파업까지 겹치면서 상권 전체가 흔들려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산·울산·창원상공회의소는 13일 이들 노조의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호소문까지 냈다.

수출도 직격탄을 맞았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현대차 노조 파업으로 수출에 차질을 빚은 차량 대수는 7만8000여대에 달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11억4000만달러(약 1조2800억원)에 이른다. 현대차의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줄었다.

보이지 않는 피해도 크다.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글로벌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 파업과 노사 협상 과정에서 수많은 ‘반(反)현대차 정서’가 생겨났다”며 “브랜드 경쟁력 약화 및 신인도 하락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입은 피해는 수치화하기 힘들 만큼 클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노조의 ‘막무가내식 파업’ 관행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한국도 다른 나라처럼 파업 시 대체근로만 허용해도 노조의 무리한 요구나 반복되는 파업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