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기 쉬운 'P2P 대출'에만 몰리는 스타트업
벤처 투자 건수와 금액이 늘어나는 등 창업 환경은 개선되고 있지만, 국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은 기술창업은 외면한 채 P2P(개인 간) 대출처럼 돈벌이가 되는 서비스 분야에만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다 보니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첨단 기술 분야 기술력이 중국에 크게 뒤져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사진)은 25일 부산 해운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AI에 대한 관심이 뜨겁고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지만 관련 기술기업 창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돈벌기 쉬운 'P2P 대출'에만 몰리는 스타트업
지난해보다 투자 건수와 금액이 늘어나는 등 창업 환경이 나아지고 있지만, 일부 업종에만 몰리는 등 쏠림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벤처펀드 결성액은 1조668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181억원)의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올 들어 7월까지 148건으로 지난해(114건)에 비해 29.8%, 투자 금액은 4583억원으로 지난해(3230억원) 대비 41.9% 늘었다.

임 센터장은 “AI 등 첨단분야의 기술 창업 사례를 찾기 힘들다”며 “P2P 대출업체는 하루에 40개씩 생겨난다고 할 정도로 일부 업종에만 창업이 몰리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인수합병(M&A)이 올 들어 급감하는 등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쉬운 업종, 뜨는 분야에만 창업이 몰린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0건에 달한 스타트업 M&A는 올해 2건에 불과하다.

홍콩의 인공지능 분야 창업액셀러레이터인 제로스에이아이의 탁 로 파트너는 “동남아지역 스타트업들도 해외 시장 진출에 주력하는데 한국 스타트업은 내수 시장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며 “기술적인 강점이 있는 회사들도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벤처캐피털(VC))인 DT캐피털의 브라이언 양 전무는 “중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글로벌 VC가 해외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한국 스타트업들도 중국을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 나갈 때 더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시장에서 통하려면 한국의 좁은 시장에 맞춘 비즈니스모델, 즉 한국적인 스타일을 벗어던져야 한다”며 “글로벌 기준과 수요에 맞춰 생각을 바꾸면 기회가 온다”고 강조했다.

해외 진출, 기술 창업 등을 위해선 VC와 창업자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하에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12년째 현지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이호찬 KTB벤처스 대표는 “미국에서 VC와 창업가는 같은 배를 탔다는 인식이 강한데 한국에서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느라 바쁘다”고 지적했다.

부산=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