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공모로 발행된 국내 주식형펀드에 맡긴 원금이 49조원을 밑돌고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다.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불렸던 주가연계증권(ELS) 시장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수익을 위해 원금 손실 위험을 감수하는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 손실도 무서워"…'초식' 재테크족
◆안전 제일주의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공모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48조9336억원으로 나타났다. 54조원 안팎의 덩치를 유지했던 올해 초와 비교하면 5조원 안팎 감소했다. 채권형펀드와 머니마켓펀드(MMF) 시장의 상황은 정반대다. 지난 3월 말 17조1333억원에 불과했던 공모 국내 채권형펀드 설정액은 21조8964억원까지 늘어났다. ‘여유 자금 대기소’ 역할을 하는 MMF 설정액은 더 빠르게 늘고 있다. 같은 기간 92조8438억원에서 113조809억원으로 4개월여 만에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새로 유입됐다.

과거에도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으면 주식형펀드를 팔아 채권형펀드로 갈아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바 박스권(코스피지수 1800~2100) 장세를 활용한 ‘파도타기’식 투자였다. 하지만 올 들어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조금 다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코스피지수가 1920선까지 떨어졌던 지난 6월에도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전 달에 비해 2000억원가량 감소했다. 주가가 내리면 펀드로 돈이 들어오고 오르면 빠져나갔던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주가지수의 움직임과 연계한 파생상품 시장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ELS 시장엔 매월 1조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하지만 하반기가 시작되면서 시장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7월엔 3368억원, 8월 들어선 1조3157억원의 자금이 ELS 시장을 탈출했다. 상환받은 원리금을 ELS에 재투자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확정금리 상품 전성시대

전문가들은 시중금리가 떨어지면서 재테크족(族)들의 성향이 ‘초식동물’처럼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연 3~4%씩 원금을 까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공격적인 투자자들도 최근 들어선 1~2%의 손실에 몸을 사린다는 게 증권사 PB(지점 자산관리사)들의 설명이다. 기온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부장은 “최근엔 자산가들도 연 5%가 넘는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상품에 대해 설명하면 기대 수익률이 얼마인지보다 얼마나 안전한지를 먼저 묻는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이에 따라 확정 금리형 상품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특히 사모로 발행되는 원금보장형 파생결합증권(DLB)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DLB는 금리나 기업의 신용등급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상품이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6%를 넘지 않으면 연 3.2%, 넘으면 연 3.21%의 이자를 주는 식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올 들어서만 신용등급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DLB를 1500억원어치 판매했다.

좀 더 구조가 복잡한 사모 DLB도 등장했다. 해외 국채선물 시장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들의 성과를 지수화한 후 이 지수를 기초로 발행되는 ‘GMAP’가 대표적인 사례다. DLB의 일종인 이 상품은 100% 원금 보장 조건을 걸면 연 4~5%의 수익을 노릴 수 있다. 올 들어 이 상품은 신한금융투자 창구에서만 240억원어치가 팔렸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