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무역 규모를 총 9010억달러(수출 4970억달러, 수입 4040억달러)로 전망했다.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무역전망치 9864억달러보다 854억달러 적다. 한은은 내년에도 무역 규모가 올해 전망치보다 불과 2.22%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를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 등 다른 연구기관들도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2011년부터 4년간 유지했던 무역 1조달러는 한때의 성공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무역 규모 축소는 세계 무역 둔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세계 무역은 거의 정체기라는 분석도 잇따른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보호무역 추세도 계속 심화되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 공장을 자국으로 옮기는 것도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국제 유가가 낮아진 것도 교역액 감소를 부른다.

하지만 한국이 대외 경기 둔화나 시장의 포화에 안주했다면 결코 무역액 1조달러에까지 가지 못했을 것도 분명하다. 1970년대 중동 석유 위기나 금융위기 등 글로벌 위기에서도 꿋꿋이 성장해 왔던 게 한국 수출이다. 여기에는 온갖 대내외 악조건 속에서도 시장을 개척하고 상품을 팔기위해 고군분투했던 수출 전사들의 땀방울이 녹아 있다. 그 저력이 한국을 세계가 인정하는 대규모 무역 국가이자 개방국가로 만든 것이다. 최근 발간된 영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보고서에서 G20 가운데 한국을 두 번째로 시장 개방적인 국가로 꼽고 있는 이유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난관은 적지 않다. 자칫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이 격화하면서 불똥이 한국으로 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의 선제적인 투자, 미래 성장동력 발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통상정책의 재정립도 시급한 과제다. 한때 무역 선진국이었던 영국이나 이탈리아는 지금 수출에서 한국에 뒤지고 있다. 실패한 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