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 안혜원 기자 ] 독일차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고급차 이미지로 수입차 시장을 장악하던 독일차들이 잇딴 악재 속에서 명품 프리미엄을 잃어가고 있다. 독일차의 위상 변화가 감지되는 사이 비(非)독일차 업체들이 연이어 프리미엄 시장에 뛰어들었다.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해 '고급차=독일'의 공식을 깨고 점유율 상승을 노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0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6월 독일차 판매량은 7만4895대로 지난해 상반기(8만2443대)보다 9.2% 하락했다. 점유율은 64.2%로 전년(68.8%)에 비해 4.6%포인트 내렸다.

특히 6월에는 판매 감소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달 독일차 판매량은 1만4343대로 전년(1만6890대)에 비해 15.1% 감소했다. 점유율은 8.4%포인트 떨어진 61.2%를 기록했다. 수입차 시장의 약 70% 넘나들던 점유율이 60% 초반대까지 떨어진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수입차 판매 대수가 전년 대비 2.6% 소폭 감소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차의 하락폭은 이례적으로 크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외한 독일 3사의 판매량이 일제히 줄었다. 특히 '디젤 게이트'에 연루된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감소폭이 컸다. 올 상반기 아우디는 10.3%, 폭스바겐은 33.1% 각각 급감했다. BMW는 4.3% 줄었다. 반면 벤츠는 독일차 중 나홀로 성장했다. 6.8%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디젤 게이트, 화재 사건 등 다양한 악재 속에서 독일차는 명품차라는 이미지에 금이 가고 있다"며 "할인 정책이 반짝 성장을 이끌었지만 전반적인 하락세를 막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E클래스, S클래스 등 큰 차가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벤츠는 타 업체들에 비해 프리미엄 이미지가 확고해 충성 고객이 많다"며 "이 것이 독일차 전반의 부진 속에서 타격을 덜 받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캐딜락 CT6. 사진=한국GM 제공
캐딜락 CT6. 사진=한국GM 제공
'절대 강자' 독일차의 브랜드 입지에 이상 징후가 엿보이면서 비독일차 업체들의 마케팅 공세가 심상치 않다. 럭셔리 시장 진입을 선언하고 잇따라 플래그십(최고급형)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적극적인 업체는 볼보다. 볼보는 1억원대 최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C90'을 상반기에 내놓았다. 볼보는 신차 출시를 시작하자마자 '스웨디시 럭셔리'를 강조하며, 독일차와 차별화된 고급차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럭셔리 경쟁에 한국GM의 캐딜락도 가세했다. 그간 준중형(ATS)과 중형 세단(CTS) 라인업만 갖췄던 캐딜락은 대형 세단 'CT6'를 내놓고 독일차에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캐딜락 관계자는 "경쟁 브랜드인 벤츠의 플래그십 세단 S클래스와 동일한 차종인 CT6의 가격대를 중형 세단 E클래스에 맞췄다"며 "공격적인 가격정책으로 독일차의 독주를 막겠다"고 자신했다.

재규어는 이달 중 SUV 'F-페이스'를 출시해 플래그십 라인업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F-페이스는 재규어가 81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SUV다. 라인업을 넓혀 상반기 판매 증가율(50.5%)을 유지해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링컨은 14년 만에 완전 변경을 거친 럭셔리 세단 '올 뉴 링컨 컨티넨탈'을 하반기에 출시해 브랜드 재도약을 이끌어 낼 전망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5~6년 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인기였던 일본차가 독일차에 밀린 것도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빼앗겼기 때문"이라며 "향후 주류 브랜드로 자리 잡으려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