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국민은행 등 5대 은행의 전세 대출 잔액이 27조9273억원으로 지난해 말 23조6636억원에서 4조2637억원(18%) 늘었다고 한다. 주택담보 대출도 2.3% 증가했다. 대기업 대출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6.0% 줄었다. 물론 5대 은행에 한정된 통계이긴 하지만 한국 금융이 기업 대출은 줄어들고 부동산 대출만 늘어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지속 불가능한 기형적 상황이다.

전세 대출 증가는 전셋값이 급격하게 인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전국 평균 전셋값은 지난해 평균 1억7446만원에서 올 6월 2억228만원으로 1년 만에 2782만원 올랐다. 서울의 평균 전셋값은 4억원을 넘겼다. 전셋값이 실제 집값의 90%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세 거래량이 전년 동기에 비해 7.5%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 대출이 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빠르게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물론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저금리 기조 아래서 불가피한 상황일 것이다. 외국 부동산도 모두 거품을 경계할 만큼 치솟고 있다. 하지만 허겁지겁 현실을 추종하고 있는 정책의 실패도 간과할 수는 없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완화하고 분양가 상한가를 폐지하는 등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책을 펼친 것도 화근일 것이다.

지난해 말 금융회사 여신심사를 담보 위주에서 상환 능력 중심으로 전환하고 일시상환 변동금리 위주 대출에서 분할상환 고정금리 대출로 유도했지만 성과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셋값 급등은 결과일 뿐 원인은 따로 있는데도 정부가 전셋값 안정을 직접 겨냥한 다양한 정책을 편 것도 패착이다. 세입자를 지원한다는 명분의 정책들은 치솟는 전셋값에 기름만 끼얹는 부작용만 낳고 말았다. 이 같은 구조는 장차 우려되는 금리 상승기에 ‘부채 폭탄’을 맞을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이 조변석개하는 여론을 추수하면 다양한 부작용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전세 대책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