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러시아 건국의 뿌리가 몽골민족이라고?
지금까지 세계사는 유럽이나 중국 중심으로 쓰였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사각지대나 마찬가지였다. 이 지역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 건 학계의 큰 실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러시아 역사학자 레프 구밀료프다.

그는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에서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이었던 훈족, 몽골족, 투르크족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추적한다. 저자는 이들 민족이 역동적인 권력투쟁을 거쳐 큰 세력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 러시아 등 인근 지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연구 가치가 크다고 설명한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투르크 한국(汗國)이 몰락한 8세기부터 몽골제국이 형성되는 13세기까지다. 주류 역사학계는 보통 중앙아시아 대초원 지대의 모든 유목민을 비슷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다르다. 이 지역은 유목민별로 유럽이나 근대 역사 못지않게 강렬하고 정력적인 고유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들이 세력을 키우고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는 장면을 역동적으로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료를 언급하며 “이 사료는 믿을 만하다”거나 “신뢰도가 낮다”는 등 옥석을 가리는 꼼꼼한 면모도 보인다.

통일을 거치며 강대한 세력을 형성한 유목민족은 이웃 나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그 증거 중 하나로 러시아 민족 탄생사를 담은 《이고르 원정기》를 재해석한다. 《이고르 원정기》에는 러시아의 뿌리가 되는 민족이 등장하지만 이 민족의 이름이나 살았던 시기와 장소 등이 특정되지 않아 역사가들에게 수수께끼처럼 여겨져 왔다. 저자는 책에 나오는 뱀독을 사용한 화살이 등장하는 전투장면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이 화살은 당시 세계를 통틀어 몽골민족만 사용했다. 몽골민족이 러시아 건국의 뿌리가 됐다는 것이다.

학계 주류와 큰 차이를 보이는 저자의 역사학적 방법론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 있다. 오늘날 다수의 역사학자는 사료를 바탕으로 ‘과거에 발생한 하나의 사실’을 규명하는 귀납적 방법론을 쓴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은 사료가 양이 적고 시기적·지리적으로 흩어져 있을 때 무력하다. 저자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사료가 이런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들어 연역적 방법론을 쓴다. 소수의 사료를 바탕으로 지리학, 기후학, 물리학 등 다른 학문을 동원하고 상상력을 보태 당시 상황을 추론한다. “당시 날씨가 매우 더웠으므로 대낮에는 활동을 자제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식이다. 상상력이 과도하면 안 되지만, 아예 없으면 이 지역을 연구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