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그림자'. 스페이스소포라 제공
'물그림자'. 스페이스소포라 제공
이선원 작가(68)는 지난 40여년 간 한지를 다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표현해온 주제는 오직 하나, 나무였다. 하지만 지루할 틈은 없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화풍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닥 펄프를 사용해 나무의 생명 에너지를, 그 다음에는 섬유 재료를 활용한 콜라주 작업을 통해 여성들의 노고를 조명했다. 종이를 접거나 나뭇가지를 엮어 입체적 조형을 만드는 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모두 나름의 뜻을 품은 심오한 작업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즐겁게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꽃을 그리고 싶으면 꽃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싶으면 나무를 그려넣는다. “이제야 편안해졌다”는 게 이 작가의 얘기다.

“서양화를 배운 사람이다 보니 뭘 그려도 ‘반드시 내 관점을 넣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어떤 대상을 그리고 싶어도 그냥 그리면 안 되고, 추상적으로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처럼 굳이 대상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그립니다. 즐겁게, 그리고 편안하게요.”

서울 정동 스페이스소포라에서 열리고 있는 이 작가의 개인전 ‘물그림자, 숲그림자’는 그 결과물 15점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이 작가는 서울대 미대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원대 미대에서 20년간 교수로 재직한 뒤 현재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조세진 스페이스소포라 디렉터는 “신록의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을 맞아 평화로운 자연이 담긴 이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시기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