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새 대표를 선출할 전당대회(8월9일)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총선 패배 후 3개월이 된 지금도 여전히 지리멸렬이다. 집권 여당의 책임감도, 유일 보수 정당의 정체성도 간 곳이 없다. 계파청산까지 선언했으면서도 연일 친박·비박의 마찰음만 낸다.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공기업 투자를 확대하는 등 나랏돈을 풀어서야 겨우 유지되는 연 2%대의 저성장 기조가 굳어져가고 5개월째 역대 최악의 청년실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진지한 관심조차 없다. 남중국해의 갈등 고조로 미·중이 첨예하게 부딪치면서 국제정세가 요동을 쳐도 말 그대로 남의 일이다.

초미의 국가적 현안인 사드 배치에서 나타난 무기력 무소신 무책임은 실망의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가 사드 배치 지역을 성주로 공식 발표한 어제 소위 TK지역 새누리 의원 21명은 지역 선정기준을 추궁하면서 지원책을 내놓으라는 집단성명을 발표했다. 지지성명을 내고 국론 통합에 앞장서야 할 여당이, 그것도 당의 중추라는 TK 의원들이 오히려 지역 반발을 유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성급한 삭발투쟁에 나선 백선기 칠곡군수나 혈서를 쓰며 주민 반대에 앞장선 김항곤 성주군수도 새누리당 소속이다. 중앙당도 국가안보에 대한 책무의식이 없다. 이러고도 집권당이라고 하는지 의문이다.

새누리당이 정체성도 모호한 ‘웰빙족’이 득실대는 제2당으로 전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공천을 둘러싼 극단적 계파다툼으로 총선에서 심판을 받고서도 근본은 변한 게 없다. 20대 국회 첫 본회의 때 정진석 원내대표의 연설은 어떤 좌파 정당의 강령인가 의심될 정도였다. 좌경적 경제민주화의 주장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채 일부 대기업의 일탈적 사례에만 목을 맸다. 비대위까지 꾸렸으나 재탄생의 노력은커녕 파당적 말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그렇게 돌고돌아 단지 다선(多選)이라는 이유로 구태 정치인이 유력한 당대표 후보라고 한다.

새누리당은 위기다. 유감스럽게도 새누리만 이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어제 당 진로에 대한 토론회에서 뼈 아픈 외부의 지적이 있었다. “새누리당의 위기는 정체성의 망각과 훼손에 있다. 대한민국의 정설(orthodoxy)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전 수호하는 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찾아야 한다”는 복거일 선생의 발제는 핵심을 짚은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 구성원들이 이런 고언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실천해낼 것인가에 있다. 정체성을 둘러싼 싸움이라면 더 치열해도 좋다. 당의 정향과 정책이 당 강령과 명실상부해진다면 얼마든지 논쟁해도 좋다. 하지만 그저 나눠먹기, 세 불리기 싸움만 계속되면 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 정체성을 되찾아 보수 정당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새누리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