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전당대회(현지시간 18~21일)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전당대회에선 부동산 기업가 출신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공식 지명한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출마 당시만 해도 ‘선거판의 광대’ ‘언더독(승리확률이 낮은 선수나 팀)’ ‘아웃사이더’로 취급받았다. 경선 초반 지지율이 올랐을 때도 기성 정치에 지친 유권자의 피로현상 정도로 여겨졌다. 트럼프가 여기까지 오게 된 비결은 뭘까.
미국 선거공식 깬 트럼프의 '5대 전략'
뉴욕타임스(NYT)는 “정치경험도, 조직도, 당의 지원도 없었는데 경선에서 쟁쟁한 경쟁자를 꺾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존 5대 선거 공식을 다시 썼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경험 내세우기보다 유권자와 눈맞추기

미국 대선 경선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항상 당 지도부였다. 지도부는 여러 경선 주자 중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당의 간판으로 내세웠다. 이번엔 그런 시도가 실패했다. 유권자는 지도부 지지를 받고 후보 지명을 기다리는 주자들을 거부했다. 대신 자신과 눈높이를 맞춘 트럼프를 선택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당시 야당 지도자인 팁 오닐 하원의장은 ‘정치의 전부는 바닥민심(All politics is local)’이라는 말을 남겼다. 트럼프는 이를 ‘전국 이슈가 중요하다(all politics is national)’로 바꿔 선거운동을 했다. 다른 경쟁자들이 주(州)별로 바닥을 훑고 지역광고와 저녁 만찬모임에 집중할 때 그는 트위터와 케이블TV, 대규모 집회 등 전국 단위 유세를 강화했다.

트럼프 경쟁자들은 말 잘하고 정치경력이 많은 주지사, 상원의원 출신이었다. ‘기업인 출신’ 트럼프는 TV리얼리티 프로그램 진행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TV토론에서 경쟁자의 약점을 공격하며 하나씩 쓰러뜨렸다. 현실정치에 질려 있던 유권자는 기존 정치를 바꿀 가능성을 보여준 트럼프에게 열광했다.

◆본선에서 통할지는 미지수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인 밋 롬니는 ‘47% 발언’으로 본선 막바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 47%는 어차피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를 찍을 것’이라는 맥락의 의미로 사용된 숫자였다. 이는 ‘서민층 혐오 발언’으로 읽히면서 그의 백악관행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트럼프는 경선과정에서 여성과 이민자, 무슬림, 흑인 등을 상대로 한 수많은 막말과 실언을 쏟아냈다. 오히려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플러스 요인이 됐다.

미국 정치권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은 금기어다. 어디서든 흑인(인구의 12%)과 히스패닉(17%) 표를 얻지 않고는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의 자격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 바탕엔 흑인이 어떻게 백악관 주인이 될 수 있느냐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의 두각에 치부를 드러낸 것 같은 당혹감을 느꼈지만 당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NYT는 트럼프의 선거법칙이 본선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8~12일 시행한 조사에서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지율은 46%에 달해 트럼프(33%)와의 격차가 13%포인트로 벌어졌다. 두 사람이 양당 본선 주자로 사실상 결정된 지난 5월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