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올해 휴가는 소박하게 캠핑? 장비 챙기다보니 이삿짐 수준
유통회사에 다니는 강 대리(33)는 작년 겨울 우연히 TV에서 누군가 스쿠버다이빙하는 모습을 봤다. “푸른 산호초 사이를 형형색색의 열대어와 자유롭게 유영하는 다이버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날부로 다이빙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한 강 대리는 주말마다 다이빙을 배웠다. 이 동호회는 매년 여름 동남아로 떠나 다이빙을 즐긴다. 20여명이 꼬박 1주일간 바다에 떠 있는 ‘리버보트’에서 먹고 자며 바닷속 세계에 몰입한다. 다음달 ‘인도양의 진주’ 몰디브로 스쿠버다이빙 투어를 떠나는 그는 벌써 가슴이 설렌다.

휴가철이 다가온다. 직장인은 ‘여름 휴가’란 말만 들어도 설렌다. 평소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1년에 한 번 ‘화려한 휴가’를 위해 참고 견딘다는 직장인도 부지기수다.

즐기는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다. 따사로운 이국 해변에 누워 망중한(忙中閑)을 만끽하는 식의 휴가는 지나간 유행이 됐다.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특별한 휴가를 구상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고 아예 성형수술 등 ‘자기 변신’의 기회로 적극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편히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리조트업체 직원은 휴가철이 달갑지 않다. 가장들은 막대한 휴가비 지출에 벌써 한숨을 내쉰다.

자전거 종주, 성형 등 소원 성취

전자회사에 다니는 오 대리(32)는 석 달 전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여름휴가 동안 자전거 국토 종주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무리하게 달리면 엉덩이 등에 상처를 입을 수 있어 미리 자전거 안장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다.

처음엔 아침에 40분 넘게 자전거를 타는 게 쉽지 않았다. 오 대리는 “인천과 부산을 오가려면 이쯤은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탔다”고 했다. 틈틈이 국내여행 관련 서적을 뒤져가며 코스를 짜고 맛집과 숙박업소도 따로 정리해뒀다. “평생 한 번뿐인 의미있는 휴가를 보내고 싶어 국토종주를 결심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휴가 중 여행을 떠나는 대신 성형수술을 받는 등 자신을 가꾸는 기회로 삼는 직장인도 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정 대리(29)는 오는 9월 추석연휴를 끼고 늦은 여름휴가를 가기로 했다. 오랜 소망이던 쌍꺼풀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평소 쌍꺼풀 없는 밋밋한 눈이 콤플렉스였지만 ‘부기 걱정’에 감히 수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추석을 껴 휴가를 쓰면 최장 12일까지 쉴 수 있어 부기가 충분히 빠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는 “휴가를 마치고 부기가 다 빠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출근할 수 있겠죠”라며 웃었다.

식품회사에 다니는 박모씨(32) 역시 다음달 휴가를 내고 일찌감치 안과를 예약했다. 20년 이상 함께한 안경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다. 고도근시인 박씨는 라섹수술을 받는다. 처음엔 수술 후 3~4일은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이후로도 1~2주간 시야가 흔들린다는 후기를 보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안경을 써 답답해 보인다’는 친구들의 말에 결국 수술을 결심했다. 수술 이후엔 오랫동안 못 한 연애 전선에도 뛰어들 생각이다. “이왕 수술을 받을 거면 긴 휴가가 주어질 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술 후엔 선글라스도 마음껏 끼고 운동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렙니다.”

‘성수기’ ‘해외여행’ 고정관념 버렸다

해외 대신 국내로 눈을 돌리는 직장인도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32)는 다음달 경남 하동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계획이다. 주변에선 ‘젊은 사람은 다 해외로 떠나는 줄 알았더니’ 하고 신기한 듯 쳐다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해외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같은 예산으로 좀 더 좋은 숙소와 음식을 고를 수 있다”며 “예전엔 휴가를 꼭 해외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그 틀을 깨니 훨씬 여유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인천의 한 제약회사에 다니는 최모씨(27)는 이번 여름휴가를 전남 해남의 미황사에서 보내기로 했다. 깊은 산속 전통사찰에 머물며 불교문화를 체험하고 정신수양을 하는 ‘템플스테이’를 택한 것이다. 최씨는 “지난해 해외여행을 갔지만 돈도 많이 썼을 뿐 아니라 긴 비행시간 탓에 다녀온 뒤 오히려 더 피곤했다”며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복잡한 도시를 떠나 숲속에서 혼자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속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에 몰입하기 위해 사찰에선 휴대폰도 꺼둘 생각이다.

여행객이 몰리는 여름 성수기를 피해 일부러 봄·가을에 휴가를 잡는 이도 있다. 정보기술(IT) 회사에 근무하는 이 대리(34)는 오는 10월 유럽으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성수기를 살짝 피하면 저렴한 항공권을 ‘득템’할 수 있어 휴가를 미룬 것이다. 올초 이미 항공권 구매와 숙소 예약을 마친 그는 5개월째 블로그 등에 올라온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수시로 찾아보며 일정을 짜고 있다. “무수히 많은 블로그와 카페를 들락거리며 사진을 보다 보니 이미 유럽을 다녀온 온 것 같습니다.”

휴가철이 두려운 직장인

부산의 한 리조트에서 일하는 강모씨(28)는 휴가철이 두렵다. 리조트를 찾는 손님이 비수기의 5~6배로 폭증해 ‘일복’이 터진다. 리조트로선 휴가철이 ‘대목’이다 보니 휴일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강씨는 매년 휴가철만 되면 “그만두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작년에는 상사에게 이런 심정을 털어놨다가 ‘후임은 구해놓고 나가라’며 되레 혼났다. 그는 “올해는 일찌감치 5월에 퇴사하겠다고 했는데 ‘6월 초까지 대체인력을 구할 테니 그때까지만 해달라’는 통사정에 붙잡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 제조업체에 다니는 조 차장(42)은 이번 여름휴가 때 강원도로 캠핑을 떠날 계획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같은 반 친구들이 가족과 캠핑 가는 게 부럽다며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텐트와 돗자리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웬걸요. 캠핑 준비에 들어가니 필요한 물품이 너무 많더군요.” 수십만원대 텐트와 그늘을 만들어주는 타프, 각종 테이블과 의자, 침낭과 베개, 전기릴선과 캠핑장용 선풍기를 샀고 바비큐할 때 필요한 버너와 각종 식기류도 구입했다. 밤에 캠핑장에서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미니빔프로젝터와 휴대용 스피커까지 사니 해외여행 가는 비용만큼 돈을 썼다. 그는 “이왕 이렇게 장비를 구비했으니 앞으로 질릴 때까지 캠핑을 다녀야겠다”고 말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