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高高한 샤·루·에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가 글로벌 명품 브랜드 중 올 들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과 비슷한 결과다. 변함없이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 작년과 비교해 매출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명품 브랜드는 구찌다. 작년에 총괄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를 새로 영입한 뒤 내놓은 신상품이 대박을 터뜨린 덕분이다. “구찌가 부활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가장 많은 매출 올린 샤넬

19일 한국경제신문이 각 백화점과 명품업체로부터 명품 잡화 브랜드 매출 순위를 받아 취합한 결과, 올해 1~5월 국내 백화점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브랜드는 샤넬이었다. 샤넬은 지난달 10일 2.55 클래식과 빈티지, 보이샤넬 등의 미디엄과 스몰 사이즈 가격을 인상했다. 모두 예비 신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예물백’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샤넬코리아가 결혼 시즌에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렸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가격 인상 전에 제품을 사려는 구매자가 몰려 매출은 되레 늘었다”고 말했다.

매출 2위와 3위는 루이비통과 에르메스다. 루이비통의 네버풀과 에르메스의 버킨백이 잘 팔렸다. 네버풀은 ‘절대로 꽉 차지 않는다(never full)’는 뜻의 이름에 걸맞게 많은 양의 소지품을 수납할 수 있는 실용성 덕분에 ‘데일리 백(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105㎏의 무게를 지탱하는 견고함과 가죽끈을 조절해 두 가지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다양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잘나간 루이비통·에르메스

버킨백도 스테디셀러다. 1984년 영국 가수 제인 버킨이 비행기에서 가방에 있는 소지품을 쏟았다. 당시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 회장이 옆 좌석에 앉아 있었다. 버킨은 “우아하면서도 실용적인 가방이 없다”고 불평했다. 불평을 들은 뒤마 회장이 수납하기 편한 가죽 가방을 제작해주면서 버킨백이 탄생했다. 이후 이 백은 세계 부유층 여성들 사이에서 ‘꼭 사야 하는(must have)’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버킨백은 개당 1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핸드백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 매장에서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물량이 없어서다. 과거 예약 대기자에 이름을 올려놓은 사람들만 매장에 물품이 들어오면 사갈 수 있다. 예약자 수가 워낙 많아 3~4년 전부터는 아예 예약조차 받지 않고 있다.

작년 7월엔 버킨백 탄생 주인공인 버킨이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에르메스에 요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버킨은 에르메스가 핸드백의 재료인 악어 가죽을 얻기 위해 악어를 잔인하게 죽인다는 사실을 알고 이같이 요구했다.

화려하게 부활한 구찌

4위는 구찌가 차지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세계 패션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자사에서 13년 동안 묵묵히 일하던 무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총괄 CD에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미켈레는 임명되자마자 패션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절제된 디자인이 특징인 구찌에 어울리지 않는 꽃과 나비, 새, 잠자리, 도마뱀 등을 옷과 가방에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이 전략은 통했다. 차갑고 획일화한 도시적 스타일에 지친 이들이 따뜻한 자연미를 살린 이 디자인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정체돼 있던 구찌의 매출도 늘었다. 국내에선 미켈레가 새롭게 선보인 실비백이 인기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실비백이 조기 품절될 정도로 잘 팔린다”며 “대기 수요도 많다”고 전했다.

5위와 6위는 프라다와 펜디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불황에도 명품 핸드백과 지갑 판매는 늘고 있다”며 “프라다 사피아노 백, 펜디 피카부 백 등은 고객들이 계속 찾는 스테디셀러”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