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이 안 보이는 조선 구조조정이 원칙도 없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부실 책임이 큰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산업은행은 자회사인 대우조선의 방만 경영과 부실 은폐를 방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이란 자격으로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자구안을 제출받고 있다. 자구계획에는 도크 폐쇄, 부동산 매각 등의 유동성 확보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산업은행은 미흡하다며 퇴짜를 놓은 분위기다. 일각에선 그룹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물론 주채권은행은 유동성이 우려되는 대출 기업에 자구안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대주주이면서 삼성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이다. 경쟁사 대주주가 다른 경쟁사를 압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해 상충의 문제가 있다. 한쪽에 유리한 결정이 다른 쪽에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산업은행이 자기 손실 최소화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대우조선 구조조정도 괜한 의심을 살 수 있다.

조선업종 문제의 본질은 대우조선 사태다. 대우조선은 2000년 이후 정부로부터 5조3000억원을 지원받고도 지난해 5조원의 손실, 2조원대 분식회계에다 부채비율이 7300%(작년 말)에 이른다. 구제금융을 무기로 낙하산 경영진이 실적 부풀리기 헐값 수주를 주도해 동반 부실을 유발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한 장본인이 대주주인 산업은행이다. 반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수주절벽’에 직면해 있긴 해도 아직은 부채비율이 낮은 편이고 구제금융을 받지도 않았다. 해법이 같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대우조선 측은 ‘조선 빅3’가 생산능력을 일률적으로 30%씩 감축하자는 부적절한 주장을 펴고 있다. 게다가 제1야당 대표가 오늘 거제를 방문해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른다. 원칙이 허물어진 구조조정으론 조선산업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구조조정에서 손 떼고 구조조정 전문 조직에 넘기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지켜야 할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