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가 대리점 대형마트 등에 제품을 공급할 때 최저 판매가격을 지정할 수 있게 된다는 소식이다. 공정위가 지금까지 금지해 온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를 허용하는 행정지침을 곧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유통업체들이 과도한 가격경쟁으로 납품가 인하를 요구한 뒤 손실을 전가하는 일이 잦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 후생이 저하된다는 판단이다.

종전에는 제조사 횡포라더니 지금은 유통사 횡포라고 한다. 가격인하 경쟁이 소비자 피해로 귀결된다는 공정위 판단은 동의하기 힘들다. 소매점의 가격 인하는 기본적으로 소비자 이익을 확대시키는 요인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품질 저하를 불러 중장기적인 후생 저하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질 낮은 제품은 소비자가 외면해 도태 수순을 밟는 것이 시장질서이기 때문이다. 제조사의 최저 판매가 설정에 대해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는 점을 참조했다지만 이 역시 궁색하다. 판례는 새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도 현행 법률에서 제조사가 필요하면 최저 판매가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유통회사가 ‘갑’의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거래를 강요하는 건 지금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제조-유통사 간 거래는 기본적으로 사적 계약이다. 그리고 계약관계는 섣불리 일반화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예컨대 새 제품 출시를 앞둔 대리점은 반값 할인을 해서라도 기존 모델 재고를 떨어내야 한다. 하지만 제조사가 ‘브랜드 관리’를 앞세워 최저 판매가 유지를 요구할 경우 대리점은 재고 부담을 떠안고 생존권마저 위협받을 수도 있다.

제조사 이익도 유통사 자유도 보호받아야 한다. 공정위는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후생이 높아지는 점이 입증될 때만 제한적으로 최저 재판매가격 지정을 허용할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하지만 후생의 크기를 계량하고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시장거래의 자유가 존중되는 것이 어느 경우에도 공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다. 규제당국의 자의적인 행정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