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을 보강해주는 방안이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이 불쑥 꺼낸 ‘한국판 양적 완화’가 다시 탄력이 붙은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집도하는 국책은행의 지원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야 한다”며 힘을 실었다. 기획재정부는 곧 본격추진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한은이 신종자본채권이나 후순위채를 인수해 국책은행의 BIS 비율을 높이는 강력한 자본확충방안이다. 산업금융채권 등을 매수해 유동성을 보강해주는 정도로는 시급한 구조조정의 동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본란에서 수차례 지적한 대로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한 구조조정은 정당성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 유럽 일본 등 상당수 선진국들도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 중이다. 유럽은 CP 회사채로까지 양적 완화 매입 채권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기준금리를 더 내리기 힘든 상황에서 장기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한은의 통화정책은 무차별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자금 수혜 대상이 특정돼 있다면 이는 개별은행 또는 정부재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 양적 완화를 수년간 전개해온 미국 Fed도 유통시장의 입구에서 국채와 국가보증 MBS를 매입했을 뿐 개별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자금은 전적으로 재정자금으로 투입해 왔다.

화폐는 누군가의 땀과 노력이 투입된 살과 피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재정은 구체적 특정적으로, 통화정책은 무차별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돈에 그 영혼의 존재증명을 묻는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사회적 비용과 효율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시급성과 불가피성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주력산업 붕괴를 막고, 고용도 지켜야 하니 속이 탈 것이다. 불가피하게 한은이 출자를 하더라도 이 사실은 분명히 해두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