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진실로 기초과학을 소중히 여기나
지난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선 제115회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번엔 중국 과학자가 처음으로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일본은 지난해에 이어 물리학상을 연속 수상하며 지금까지 과학 분야에서 총 21개의 노벨상을 가져갔다. 한국에 노벨상은 언제까지 ‘남의 집 잔치’로만 남아 있을까. 한국의 기초과학 수준은 어떤가.

한국은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해 독특한 경쟁심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가벼이 여기며, 이런저런 경쟁에서도 이기는 대단한 나라”란 시중의 농담도 있을 만큼 그 의식이 강하다. 이것이 한국의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도 많이 했다.

야구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야구 강국 일본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데 이어 지난 11월 한·일전에선 초반에 밀리고 있던 승부를 9회 때 뒤집어 이겼다. 한국에선 당연히 온 국민이 환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21개나 받은 과학 분야 노벨상을 한국은 아직 하나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국민들께 대단히 송구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실이 있다. 왜 야구는 일본과 경쟁이 되는데 기초과학은 안 되는 걸까. 전자와 자동차산업 등도 일본과 맞서고 있는데 기초과학은 왜 그렇지 못할까.

그 이유는 스포츠나 산업은 각별한 각오로 절치부심하면 그래도 따라갈 수 있지만, 기초과학은 노력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은 노력을 넘어 과학 자체를 즐기며 평생 몰입하는 연구자만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기초과학은 “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지는데 사과보다 훨씬 무거운 밤하늘의 보름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와 같이 인간이 세상에 대해 갖는 원초적 궁금증의 답을 찾는 일이다. 인간은 모든 자연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호기심을 풀었을 때의 희열을 위해 인생을 바치기도 한다. 말하자면 기초과학은 경제 발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다. 물론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던 실용성을 얻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실용 추구는 기초과학자들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기초과학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선 우선 호기심이 넘치는 인재들을 교육 과정에서 격려하고, 이들로 하여금 작은 문제라도 그 답을 스스로 찾게 해야 한다.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느끼도록 해 줘야 한다. 아울러 이렇게 성장한 과학자들이 연구만으로도 평생 생계를 비롯한 다른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대학 입학을 위해 다지선다형 객관식 수학능력시험 준비에 몰입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이런 인재가 길러질 수 있을까. 한국의 지원 체제에서 하나의 연구 주제에 평생을 거는 과학자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막을 내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원자를 탐구한 기초과학 연구자들이었다. 이들의 연구를 토대로 원자폭탄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생산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기술은 원자력 발전이란 평화적이고 실용적인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기술 연구라면 당연히 5~10년 앞을 내다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면 한두 세대 앞을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틀림없는 사실은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 투자와 진흥 사업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구 방향 결정이나 연구비 집행과 같은 실제 업무에선 정부가 멀어질수록 좋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에선 관료가 맡아서 할 일이 아니다. 이 일은 과학자들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 한국도 이른 시일 내에 노벨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 안타깝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