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남보다 잘하는 걸로는 부족…판 뒤엎는 '게임체인저' 돼라
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이던 산업화 시기에는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소비자, 상품, 서비스, 지리적 입지 등을 중심으로 시장을 구분하고 사업 영역을 정했다. 내수시장만 신경 써도 충분히 성공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정보기술(IT)과 디지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시장과 국제시장을 구분하는 것이 유명무실해졌다. 디지털 세상과 물리적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됐고, 수많은 틈새시장이 새롭게 태어났다.

무엇보다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 변화는 급진적이고 예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어떻게 생겨나고 어디를 향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도 어려워졌다. 저명한 경영전략가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피터 피스크 스페인 IE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이나 사람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부른다.

게임 체인저는 최근 IT와 경영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용어다. 일반적으로 판을 뒤흔들어 시장의 흐름이나 판도를 바꿔 놓을 만한 혁신적인 사건과 사람, 서비스, 제품 등을 의미한다.

피스크 교수는 신간 《게임 체인저》에서 게임 체인저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커지는 시대에 혁신으로 세상을 바꾸고 풍요롭게 해주는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기업의 모델로 새롭게 정의한다. 게임 체인저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더 큰 틀에서 남다른 것에 대해 고심하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름의 규칙을 세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무언가 해낼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비전에 맞춰 미래를 창조한다. 게임 체인저는 대기업이거나 중소기업일 수도 있고 신생기업이거나 이미 성공한 기업일 수도 있다.

저자는 생각, 탐구, 파괴, 영감, 디자인, 공명, 가능성, 동원, 영향, 증폭 등 열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게임 체인저가 시장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본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들고 다양한 경영 이론을 동원한다.

게임 체인저들은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대담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세계적으로 힘의 축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탐구’한다. 그 방향으로 ‘파괴’적인 전략을 구사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장을 구축한다. 이들의 브랜드는 삶을 윤택하게 하는 ‘영감’을 주며, 고객 중심의 ‘디자인’을 제시한다. 이들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삶에 깊은 ‘공명’을 주는 아이디어와 고객이 더 가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가능성’을 판다. 이들은 고객과 브랜드, 고객과 고객을 연결해 가치를 제공하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즉 고객을 ‘동원’한다. 또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사람과 조직의 잠재력을 ‘증폭’시킨다.

저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영자 500명에게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기업과 브랜드를 추천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유통, 금융, 건강관리, 소비재, 미디어, 패션, 여행, 식품, 기술, 제조 등 10개 분야에서 10개씩 모두 100개 기업을 선정해 이들 기업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혁신을 추구하며 성장하고 승리하는지 소개한다.

삼성 애플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등 이미 혁신기업으로 명성을 얻은 대기업부터 비영리 소액금융 기업 지디샤(Zidisha), 태양열 장비업체 아주리(Azuri), 시간제 자동차 공유 서비스 업체 집카(Zipcars) 등 다양한 분야의 차세대 기업이 ‘게임 체인저’로 등장한다.

피스크 교수는 오늘날의 시장을 여러 가지 퍼즐 조각이 모여 다양한 패턴을 형성하는 만화경에 비유한다. 시장은 수많은 기회와 가능성으로 이뤄진 만화경이다. 게임 체인저는 이런 기회와 가능성을 창의적으로 조합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해내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을 정의하고 바꾼다. 창조적인 혁신기업은 게임 자체를 바꿔 경쟁에서 승리한다.

저자는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됐습니까”란 질문으로 시작해 ‘어떻게 하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한다. 리더십, 브랜드, 창의성, 혁신, 마케팅, 디자인 등 경영의 거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는 영역에서 글로벌 트렌드와 경영 이론, 실제 기업 사례를 들며 게임 체인저의 이상적인 형태를 제시한다. 한 영역을 깊이 파고들어 정교한 이론을 전개하기보다는 워낙 방대한 영역과 분야에 걸쳐 논의하다 보니 개론서 수준에 머무는 느낌을 준다. 반면 딱딱한 경영 서적보다는 훨씬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다. 새롭고 독창적인 이론은 눈에 띄지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게임 체인저가 세상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고 주도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살펴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특히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된’ 사람들이 참고서로 삼을 만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