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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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론’
유년시절은 탄탄대로였지만
부친 돌아가신 뒤 생계 책임져
시련 이겨낸 원동력은 용기
‘IT맨’ 변신·MBA 유학 이끌어

그의 ‘CEO론’
경영하려면 승부사 기질 갖춰야
식당처럼 대표메뉴에 집중을
물면 안 놓는 ‘핏불테리어’처럼
年매출 10조 목표 향해 달릴 것


강성욱 GE코리아 총괄사장(54·사진)은 직업이 ‘최고경영자(CEO)’다. 1996년 정보기술(IT) 기업인 탠덤컴퓨터 동아시아 총괄대표를 맡았던 것부터 치면 국내외를 오가며 올해 20년째 CEO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스페인 타파스 전문점 ‘오스테리아 마티네’에서 만난 강 사장에게 성공 비결을 물으니 “운과 타이밍이 참 좋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꼭 겸손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운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있어야 따른다”며 “점심시간이지만 와인 한잔할 용기가 있으시죠(웃음)”라고 물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이탈리아 와인이었다. 그는 와인의 ‘마리아주’(와인과 어울리는 음식)로 전통 스페인 스타일의 타파스를 골랐다. 국경을 넘나드는 음식 조합은 20년간 아시아를 누빈 기업인과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용기는 시련을 운으로 바꿔 놓는다”

강 사장이 10년간의 싱가포르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 올해가 4년째, 이 식당을 찾은 지는 3년이 조금 넘었다. 강 사장은 “시스코시스템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로 오랜 기간 외국에서 살다 와보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며 “회사 근처에서 이 식당을 발견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자주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다국적 기업 CEO 모임을 이 식당에서 열었는데 참석자의 99%가 맛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와인을 몇 모금 마시자 그는 “운은 언제나 고통이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며 얘기를 풀어갔다. 강 사장은 한국산업은행에 근무하던 부친 덕분에 비교적 넉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서울 명문 사립학교인 은석초등학교에 다녔고, 전교 회장도 했다. 고려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탄탄대로였다.

고시 공부가 싫어 법대 대신 경제학과를 택했지만, 부친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고시를 봤다. 대학 2학년 때 행정고시 재경직 1차에 합격했으나, 이듬해 2차 시험에서는 미끄러졌다. 그에게는 더 큰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듬해 불의의 사고로 부친이 세상을 떠난 것. 강 사장은 스물네 살에 가장이 됐다. 더 이상 고시 공부나 해외 유학을 꿈꿀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한국IBM이었다.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학계, 관계, 연구소, 금융계 등으로 진출했으니 그의 표현대로 ‘희소성’이 있는 선택이었다. 엔지니어링 파트를 지원해 1년간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교육을 받았다. 강 사장은 “경쟁이 적고 글로벌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해 경제학도에서 엔지니어로 진로를 바꿀 용기를 냈다”고 회고했다. 입사 후의 삶은 고달팠다. 야근하다 사우나에 가서 쪽잠을 자고 다시 곧장 회사로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고객사들을 상대로 강의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앞날은 뻔해 보였다. 강 사장은 또 한 번 용기를 냈다.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3년간의 IBM 생활을 정리한 그는 미국 MIT 슬론경영대학원(MBA)에 진학했다.

기업도 ‘대표 메뉴’ 집중

강 사장이 ‘CEO론(論)’을 시작할 무렵 푸아그라로 만든 소시지와 꽃게 로제 스파게티 등 주문한 음식이 순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포크를 올리자 10㎝ 남짓한 소시지는 부드럽게 끊어졌다. 소시지에 올려진 노란색 트러플(송로버섯) 소스는 푸아그라의 부드러운 식감과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풍미를 더했다. 강 사장은 푸아그라 소시지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그의 인상과 취향은 닮아 있었다. 그는 “두 음식은 이 식당의 대표 메뉴”라며 “식당에 왔으면 대표 메뉴를 먹어봐야 하지 않느냐”고 권했다. 그는 기업도 대표 메뉴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얘기를 이어갔다.

1990년 탠덤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 사장은 홍콩으로 파견 명령을 받았다. 홍콩 조직이 수익을 내지 못하니 일부만 남기고 정리(구조조정)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홍콩에서 탠덤 서비스를 받는 기업 고객들을 만난 뒤 그는 생각을 바꿨다. 홍콩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해 증권거래소 은행 통신업체 등에 24시간 제공하는 서버 서비스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한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며칠 뒤 탠덤 미국 본사로 “충분히 흑자를 낼 수 있으니 시간을 주면 살려보겠다”는 강 사장의 보고서가 올라갔다. 그가 여러 차례 정상화 근거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자 본사에서도 두 손을 들었다. “살리지 못하면 당신이 1순위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탠덤의 홍콩 비즈니스는 8개월 만에 수익을 내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강 사장은 5년 뒤 서른네 살의 나이로 탠덤 동아시아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는 “결정하기 전에는 모든 가능성을 보고 고민을 하되, 결정한 뒤에는 옳다는 생각을 갖고 밀어붙여야 한다”며 “고비 때 승부사적 기질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업을 경영하며 깨달은 노하우”라고 말했다.

그가 CEO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말 탠덤은 컴팩에 인수됐고, 컴팩은 다시 6개월 뒤 당시 세계 2위 서버 업체였던 디지털을 합병했다. 그는 1998년 7월 탠덤, 디지털, 컴팩 3사의 한국 합병 지사인 컴팩코리아 사장에 임명됐다.

3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회사 출신이 대표가 되다 보니 파벌 간에 음해가 난무했다. 7월에 사장을 맡은 그에게 본사에서 4분기에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실적을 내지 못하면 물러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대규모로 인력을 감축하라는 명령도 떨어졌다. 노조의 반발은 거셌다.

강 사장은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1000여명의 전 직원을 보광피닉스파크에 모아 놓고 대대적인 단합대회를 열었다. 그는 직원 앞에서 “‘우리 탠덤, 우리 디지털, 우리 컴팩’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의 컴팩’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역설했다. 본사에는 인력 구조조정 규모를 최소화하겠다고 통보했다. 본사에서는 난감해 했지만 직원들은 환호했다. 강 사장은 “직원들의 입장과 회사의 미래를 균형 있게 보고 주장을 굽히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의 협력이 뒤따랐다”며 “젊은 사장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우리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직원들이 똘똘 뭉쳤다”고 회상했다. “CEO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해”였다.

“리더는 긍정적 사고로 가득차 있어야”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성욱 "탠덤부터 GE까지 20년째 CEO…리더는 성공 바이러스 퍼트려야"
강 사장은 2012년 GE코리아 사장으로 영입됐다. GE코리아 39년 역사에서 첫 외부 발탁 인사다. 강 사장은 “대형 기업을 경영해 보고 글로벌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원하다 보니 선택받은 것 같다”며 “IT 기업이든 GE 같은 중공업 기업이든 조직이 성공하려면 리더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턴어라운드 전문가’로 규정했다. 다양한 IT 기업을 거치면서 기울어가는 회사를 되살린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리더는 긍정적인 사고로 직원들에게 성공 바이러스를 퍼트려야 한다”며 “어려운 상황에도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냉철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리더가 일관돼야 직원들이 따라오고 생각이 다른 직원은 결국 떠날 것이니, 궁극적으로 조직이 뭉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곱창을 토마토 소스에 버무린 트리파가 나오면서 2시간에 걸친 점심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강 사장은 자신의 목표를 털어놨다. 그는 “GE코리아를 연매출 10조원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당장의 목표”라며 “직원들에게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맹견 ‘핏불테리어’ 정신을 강조하듯이 나도 직접 뛰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음식점을 나서면서 그에게 청년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청년은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배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애정을 거둬서는 안 된다”며 “항상 ‘나는 행운아고 소중한 존재니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긍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리더론’과 일맥상통했다. ‘긍정의 마인드’로 똘똘 뭉친 CEO다운 답변이었다.

■ 선진적 인사시스템 유명…GE, 채용 때 야망·열의 평가

제너럴일렉트릭(GE)은 미국에서도 선진적인 인사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강성욱 사장은 “GE는 사람을 뽑을 때 해당 직위에서 얼마나 잘할지 못지않게 앞으로 얼마나 더 잘 배우고, 그 생태계에서 절 적응할지 그리고 GE 내에서 다른 직책으로 옮겨가고자 하는 야망과 열의를 가졌는지를 기준으로 선발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GE의 장점이자 다른 기업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성욱 "탠덤부터 GE까지 20년째 CEO…리더는 성공 바이러스 퍼트려야"
■ 강성욱 사장의 단골집 오스테리아 마티네
꽃게 로제 스파게티 인기…기업인·연예인 즐겨 찾아


[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성욱 "탠덤부터 GE까지 20년째 CEO…리더는 성공 바이러스 퍼트려야"
서울 논현동에 있는 타파스 전문점이다. 타파스는 스페인어로 뚜껑이란 의미로 한두 입에 다 먹을 수 있는 적은 양의 요리를 통칭하는 말이다. ‘오스테리아’는 소박한 가정의 부엌이나 주점으로, 편안하고 부담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집에서 먹는 것과 같이 간편한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2000년 학동사거리 옆에 문을 연 뒤 이웅열 코오롱 회장, 탤런트 정우성 씨 등 유명인사들의 단골집으로 이름을 알렸다.

메뉴는 27가지 타파스와 10여 종류의 이탈리아 파스타, 스테이크 등이 준비돼 있다. 꽃게로 맛을 낸 로제 스파게티(2만4000원)와 신선한 갑오징어와 트러플(송로버섯) 향이 어우러진 먹물 리조토(2만4000원)가 인기가 많다. 한광호 매니저는 “계절에 어울리는 타파스를 두 달마다 두 종류씩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며 “소믈리에 매니저가 선별한 세계 각국 180여종의 와인은 손님들이 식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라고 소개했다. (02)3444-2673

■ 강성욱 사장

△1961년 서울 출생 △서울 고려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4년) △한국IBM 입사(1985년) △미국 MIT 경영대학원 석사(1990년) △탠덤컴퓨터 동아시아 총괄대표(1996~1997년) △컴팩코리아 사장(1998~2001년) △한국HP 엔터프라이즈시스템 담당 사장(2002년) △시스코시스템스 아·태지역 부사장(2002~2005년) △시스코시스템스 아·태지역 기업·커머셜사업 사장(2006~2011년) △GE코리아 총괄사장(2012년~)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