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문화·예술계 잇단 표절 논란…"무의식적으로 베꼈어도 표절"
소설가 신경숙 씨의 ‘전설’, 배우 윤은혜 씨 의상 등 문화·예술계에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학작품 등의 특성상 100% 창조가 불가능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지식재산권의 범위나 침해 여부에 대한 작가들의 이해 부족도 한몫한다는 지적이다.

○추상적 아이디어는 저작권 보호 못 받아

표절 여부에 대한 법원의 기본 잣대는 ‘실질적 유사성’과 ‘의거관계’다. ‘코리안 메모리즈’를 쓴 소설가 최모씨가 영화 ‘암살’(사진) 제작사 측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여성 저격수 같은 인물유형이나 임시정부에서 암살단을 조선으로 파견한다는 등의 추상적 줄거리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 영역에 속한다”며 실질적 유사성을 부인했다. KBS 드라마 ‘사랑비’와 ‘왕의 얼굴’을 둘러싼 표절 시비에서도 같은 이유로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창작뮤지컬 ‘로기수’에 대해 영화사와 시나리오 작가가 공연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사건은 의거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영화 트리트먼트와 뮤지컬 대본은 모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소년병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점 등 주요 등장인물 관계나 전체 줄거리가 비슷해 보이기는 하나 서로 독자적으로 창작됐다는 자료가 있는 등 뮤지컬 대본이 기존 저작물에 의거해 작성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표현의 자유’ 역시 표절 여부를 가리는 법원의 중요한 기준이다. 문화콘텐츠 기획사 대표가 MBC 창사 특별드라마 ‘선덕여왕’에 대해 자신의 뮤지컬 대본을 표절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은 먼저 창작한 사람의 권리로 인해 나중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MBC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무의식적인 표절도 표절”

소설가, 시인, 시나리오 작가 등은 초창기 남의 작품을 정독하거나 베껴 쓰는 습작으로 글쓰기를 읽힌다. 남이 쓴 좋은 글이나 줄거리, 등장인물 등을 메모해 두거나 기억했다가 자신의 작품에 녹여 쓰는 경우가 많고 이는 표절 시비가 종종 일어나는 이유기도 하다. 이때 표절 논란이 제기되면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본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해명한다. 소설가 박민규 씨는 “혼자 동굴에 앉아 완전한 창조를 한다 해도 우연한 일치가 일어날 수 있다”며 한때 표절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지식재산권 전문가들은 그러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던 게 표출됐더라도 표절이 인정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무의식적인 표절도 표절로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의식적 표절’이란 표절이라고 볼 만큼 명백한 유사성이 있으면 원저작물의 존재를 인식했는지가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의거관계의 입증 곤란을 완화하는 이론으로 미국에서 판례로 인정됐다.

○창작노트, 저작권 등록이 시비 예방

전문가들은 표절 시비를 예방하기 위해선 증거를 남겨둬야 한다고 권고한다. 임 변호사는 “창작노트나 책 구매 영수증 등 독립적인 창작에 관한 증거를 남겨두고, 창작이 완료된 저작물은 바로 저작권 등록을 해두는 게 실제 소송이 벌어졌을 때 훨씬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조정욱 법무법인 강호 변호사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시간적 여유를 두고 여러 사람이 모니터링한다면 본의 아니게 표절 시비에 걸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7번방의 선물’ ‘킹콩을 들다’ 제작자인 이상훈 법무법인 화우 상임고문은 “작가나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사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표절 여부를 사전에 알기 어렵다”며 “전자문서 등의 형태로 작품을 미리 등록해 표절 여부를 체크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