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현대의 아스트라이아 저울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많은 신이 존재한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신과 인간은 함께 살았는데 점점 인간의 악한 본성이 나타나면서 신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의 곁을 지킨 신은 정의의 여신인 아스트라이아다.

아스트라이아는 항상 저울을 가지고 다녔다. 인간끼리 다툼이 일어나면 당사자들을 저울의 양쪽에 올려놓았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을 태운 접시는 죄의 무게 때문에 내려가고, 잘못이 없는 사람을 태운 접시는 올라갔다. 그의 저울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저울은 신화에 등장할 만큼 인간의 문명 발달에 필수 도구였다. 고대 이집트 벽화를 비롯해 모든 문명 발상지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을 보면 현재의 양팔 저울과 비슷한 형태의 저울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진나라 진시황의 최고 업적이 도량형 통일이었듯, 저울은 농경사회 시대 조세제도나 물물교환 등 국가 통치와 사회질서 유지에 매우 중요한 도구였다.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면서 질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부력, 전기량 등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식의 저울과 측정 기술 개발이 꾸준히 이뤄졌다. 최근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저울의 기준인 표준분동과의 비교에 의한 질량 측정 대신 절대적인 질량값을 재정의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비행기와 우주선, 해양구조물 같은 대용량 질량에서부터 작은 원자의 질량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대용량의 질량 측정 기술은 인간이 제작하는 구조물의 안전성을 높이고, 미세한 질량 측정 기술은 나노세계와 분자레벨의 상호작용을 밝히기 위해 쓰인다.

이처럼 정확해진 저울은 현대 사회의 국가 간 무역 분쟁을 없앤다. 시장에서의 정확한 가치 설정은 물론 안전과 건강 등 삶의 질 보장을 위한 기준 제공을 가능하게 해준다. 과학 및 산업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아스트라이아는 다른 신들처럼 인간 곁을 떠날 때 자신의 저울을 하늘에 걸어 천칭자리로 남겼다고 한다. 마지막까지도 인간들이 바뀌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단번에 옳고 그름을 판단한 아스트라이아의 저울처럼 오늘날의 측정 과학기술은 사회 정의를 지키는 정확한 저울이다.

신용현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yhshin@kriss.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