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와 '5년 전쟁' 뚫고…발레오, 도요타 수출 길 열다
자동차 부품업체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발레오)가 5년째 계속되는 노조 시위와 소송의 악조건 속에서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와 부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처음으로 일본 부품회사의 독점 공급이라는 틀을 깨고 수출길을 연 것이다. 수주 규모는 올해 200억원을 시작으로 4년간 1000억원이다.

발레오는 2010년부터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금속노동조합과 소송을 벌이는 등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강기봉 발레오 사장은 지난 4일 경북 경주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도요타가 지난해 출시한 미니밴 ‘알파드’와 픽업트럭 ‘비고’에 들어가는 발전기와 시동모터를 올해부터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부품은 도요타의 부품 계열사인 덴소가 공급하던 것으로 도요타가 대당 15만원 이상인 핵심 부품을 일본 외 기업에 맡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홍섭 발레오 노조위원장은 “발레오 근로자들이 금속노조의 굴레에서 벗어났기에 가능한 결과”라며 “금속노조는 여전히 발레오 직원 800여명과 협력사 직원 2000여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에 대한 부품 수출은 강 사장이 지난 4년간 매진한 홀로서기 노력의 결실이다. 2010년 초 적자의 늪에 빠진 발레오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 연봉 7000만원 이상 받는 경비직을 외부업체에 맡기려다 금속노조와 당시 발레오노조의 연대파업에 직면했다. 그는 이에 맞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 여파로 발레오는 현대자동차의 소형 엔진 전장품 납품회사에서 제외됐다.

강 사장은 “여기서 밀리면 금속노조 천국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에 이후 4년여 동안 다른 활로를 개척하는 데 죽기살기로 매달렸다”고 했다.
금속노조와 '5년 전쟁' 뚫고…발레오, 도요타 수출 길 열다
노조 外風도 이겨낸 기업가 정신
'철옹성' 일본 부품시장 뚫었다


도요타가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의 우수한 기술력에 관심을 보였지만 협상은 쉽지 않았다. 2010년 3월 도요타의 구매 및 설계 담당 임원이 발레오 공장을 찾았을 때 금속노조는 공장 밖에 “일용직이 만든 발레오 제품은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일본어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강기봉 사장은 금속노조의 방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요타 측과 20여차례 협상과 부품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는 “금속노조가 막무가내로 끈질기게 방해했다”고 회고했다.

금속노조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이 성사된 데는 금속노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노조를 설립한 정홍섭 위원장의 힘이 컸다. 그는 도요타 간부들이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노조를 믿고 제품을 사달라. 노사문제 때문에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금속노조와 '5년 전쟁' 뚫고…발레오, 도요타 수출 길 열다
발레오는 프랑스 발레오그룹 이 1999년 만도기계 경주 공장을 인수해 세운 회사다. 발레오 노조는 2001년 금속노조에 가입한 뒤 해마다 파업을 벌였고, 2010년 초엔 100일이 넘는 노사분규에 직장이 폐쇄되기까지 했다. 당시 프랑스 본사는 “매년 반복되는 파업을 못 견디겠다”며 공장 철수까지 검토했다. 노조원들은 “노사 갈등으로 공장을 잃어선 안 된다”며 2010년 6월 전체 조합원 601명 가운데 550명이 참석한 총회를 열어 97.5%(536명)의 찬성으로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하고 새 노조(기업별 노조)를 만들었다.

새 노조는 무분규를 선언하고 임금·단체협약을 회사에 일임했다. 회사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고용을 보장하고 “수익의 25%를 직원에게 돌려주겠다”고 화답했다. 적자였던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2009년까지 3000억원 안팎이던 매출이 지난해엔 5350억원으로 늘었다. 2010년 6100여만원이던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약 8200만원으로 32%나 늘었다. 직원들은 해마다 평균 1000만원이 넘는 성과급도 받고 있다. 최근 3년간 산업재해 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경주지역에서 법인세와 지방세로 연간 100억원 이상을 내고 협력사를 포함해 2500여명의 일자리를 만든 건실한 회사로 성장했다.

4일 오후 찾은 발레오 경주 공장에선 여전히 노동가가 확성기를 통해 큰소리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회사 바로 옆 용강공원에 5년째 불법으로 천막을 치고 농성과 시위를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가 틀어놓은 것이다. 공장의 출입문 대부분은 이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굳게 닫혀 있었다. 매년 400여억원씩 흑자를 내는 회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발레오와 금속노조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발레오에 불리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이 “발레오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 당시 단체협약권은 금속노조에 있었던 만큼 금속노조 위원장의 동의가 없었던 금속노조 탈퇴는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5년간 새 노조가 회사와 한 합의는 모두 무효가 될 위기에 처했다. 금속노조 위원장의 동의 없이는 앞으로도 탈퇴가 불가능하다. 아직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여기서도 회사가 패하면 공장 철수를 검토하겠다는 얘기가 프랑스 본사에서 나오고 있다.

정 위원장은 “대법원 판결에서도 금속노조가 승리하면 회사와 직원들이 설 자리는 사라진다”며 “애써 살려놓은 우리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제발 금속노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노사가 손잡으면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레오가 입증한 만큼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금속노조에서 해방된다면 2년 내 매출 1조원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경주=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