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5포세대'가 불행을 탈출하는 길
요사이 청년들의 불행을 말하는 단어들이 자주 신문·방송에 소개된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서른세 살까지 취직을 못했다는 ‘삼일절’ 등은 미취업자의 막막한 현실을 묘사한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세대’가 출현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추가로 포기한 ‘5포세대’가 벌써 등장하고 ‘7포’ ‘9포’가 다투어 나오는 형편이다.

이런 조어(造語)들은 청년들을 동정해 지어냈겠지만 그들의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이 못되는 부정적 단어들이다. 청년들이 이런 세태에 젖으면 절망에 굴복함을 당연시할 수 있다. 또 누군가 원망의 대상을 찾을 것이다. 이미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모두가 정권·기업의 탓이며 과거 고도성장기 운 좋던 세대들이 단물을 다 빨아먹고 경제위기와 가혹한 경쟁만 남겨 놓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5포세대들이 남의 탓을 하려면 제대로 상대를 짚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의 사회적 합의란 막무가내로 떼쓰고 버티는 집단이 합리적인 집단을 윽박질러 양보하게 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에 모든 짐을 둘러씌우는 게 관행이 됐다. 그러나 기업은 고용의 주체이니 기업이 쇠하면 고용이 막히는 것이 상식이다. 청년들은 기업이 아니라 이런 터무니없는 합의 시스템과 떼쓰는 집단, 이를 만드는 오늘의 정치를 탓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정부가 처참한 고용시장을 타개해보겠다고 시작한 ‘노·사·정 대타협’은 노조 측이 임금체계개편을 비롯한 5개 타협사항에서 하나도 양보를 안 해 와해됐다. 원래 전체 근로자의 10%에 해당하는 기득권노조는 노측을 대변할 자격이 없다. 실상 이들이 기득권을 하나도 내려놓지 않기에 나머지 90% 일반근로자·비정규직·실업자들의 불행이 초래된다. 민주노총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이번 주 총파업에 돌입하고, 한국노총도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5포세대는 이렇게 귀족노조가 전횡해도 고요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해 국가기능을 마비시키는 존재가 되고 있다. 청년들은 이 정권의 첫 1년간 야당이 국회를 뛰쳐나가 파업을 해도, 세월호 사건을 빌미삼아 그 다음 1년을 포탈해도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정치가 존재하는 한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고 청년세대의 불행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어렵지만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비가 급팽창하는 13억 인구의 시장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은 한국만이 가지는 이점이다. 극심한 경쟁과 고학력으로 다져진 우리 인력은 향후 금융·교육·의료·법률·문화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세계 최고 경쟁력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런 기회는 친기업·친시장·경쟁·개방 등의 환경이 제공될 때 성장과 고용기회 창출로 수확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당리당략의 포로가 돼 산업을 폐쇄시키고 국민들을 이기적 집단으로 나눠 서로 싸우게 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지금의 국가적 아젠다는 경제민주화, 수도권규제, 동반성장, 사회적 기업 등이다. 경제성장과 고용이 충만하던 과거의 시대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1960~70년대는 정치적 억압체제였지만 경제 건설에 매진하자는 정열이 대통령, 국회, 관청, 기업, 신문·방송, 도농(都農), 노소 어디에나 충만했다. 그 열기에 기업은 맨손으로 시장 개척에 나섰고 청년들은 전화(戰禍) 중인 베트남에 뛰어들고 중동으로 떠나 노동을 했다. 지금은 대통령이 “중동에 가라”는 말을 하자마자 “중동, 너나 가라”는 비아냥이 들끓는 실정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5포세대를 탈피하는 길은, 비록 옛날 같은 열정은 아니더라도, 정치·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기업과 성장을 중시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5포세대 자신이 불행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한 누가 그들을 절망의 늪에서 건질 수 있겠는가.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