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은 자리 원해? 농협을 거쳐라!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2013년 3월 국무총리실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연세대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옛 재무부에서도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치며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로 불린 그를 탐내던 금융회사가 많았다. 임 후보자는 여러 제안을 마다하고 그해 6월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민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공직과의 인연이 멀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1년8개월여의 농협금융 재직 경험과 성과는 오히려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금융권에서는 임 후보자가 금융위원장이 되는 데 농협이 ‘점프대’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더 높은 자리 원해? 농협을 거쳐라!
○농협은 경력 ‘점프대’

임 후보자뿐 아니다. 농협을 거친 뒤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많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농협을 거쳤다. 2008년 2월 재정경제부 1차관에서 물러난 뒤 쉬고 있던 그를 농협이 불렀다. 농협경제연구소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김 전 위원장은 2010년 9월까지 2년간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를 맡으며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금융 부문 ‘멘토’ 역할을 했다. 이듬해인 2011년 1월 그는 금융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임 후보자가 금융위원장이 되면 농협은 장관급 인사만 두 명을 배출하게 된다.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도 농협과 인연이 있다. 그는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중 2012년 8월 농협금융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그러다 2013년 1월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으로 뽑히면서 사외이사 자리를 내놨다. 그는 그해 4월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금융권이 다가 아니다. 정치권, 정부, 연구기관 등 전반에 걸쳐 농협 인맥이 퍼져 있다. 현정택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홍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2013년 4월 농협금융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지난 1월까지 사외이사로 활동하던 그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발탁되면서 사외이사직을 내놨다.

이만우 새누리당 국회의원(비례대표)도 농협에 몸담았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이던 그는 2012년 3월 농협금융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두 달 뒤인 그해 5월에 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바통은 홍 회장에게 넘겼다. 배국환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해 8월까지 농협금융 사외이사로 있다가 인천시 정무부시장에 발탁됐다.

농협중앙회도 농협 인맥에 힘을 보탰다. 권태신 전 국무총리실장은 2010년 11월부터 약 4년간 농협중앙회 비상근이사로 활동했다. 그는 지난해 3월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에 취임했다.

○연봉도 적은데 왜?

농협을 거친 인사들이 잇따라 영전하는 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게 금융권의 판단이다. 우선 농협이 소위 ‘잘될 만한 사람을 뽑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 자체가 선거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인사 수요가 있을 때마다 외부의 추천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다”며 “그러다보니 이른바 끈 떨어진 사람보다는 정치권이나 정부, 학계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많이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농협은 다른 금융회사보다 상대적으로 연봉이 적다. 그렇지만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관(官)’의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는 데다 농민을 위한다는 명분도 있어 중량급 인사들의 선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게 농협 내부의 분석이다.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외국인 주주가 없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농협에서 일하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분이 있다”며 “외국인 주주들을 위해 일했다는 평가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