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국 그림책
1970년대까지는 그림책이랄 게 따로 없었다. 어쩌다 해적판이 굴러다니긴 했지만 계약을 맺지 않았으니 원판 필름이 없었고, 색상도 조잡했다. 서양에서 최초의 어린이 그림책 세계도회(1658)가 나온 지 350여년이 흘렀는데도 당시는 그랬다. 우선 먹고사는 일이 더 급했다.

국내에서 그림책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시공사와 비룡소, 창비, 보림 등이 아동문학과 그림책을 본격적으로 출간하면서 시장이 활기를 띠었다. 정식 계약을 맺은 외국책도 많이 들어왔다. 신진 작가들의 창작 그림책이 늘고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졌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부모도 많아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그림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동도서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라가치상 수상작도 잇달아 나왔다. 2004년 팥죽할멈과 호랑이(픽션), 지하철은 달려온다(논픽션)를 시작으로 마법에 걸린 병(2006, 픽션), 미술관에서 만난 수학(2009, 논픽션), 돌로 지은 절, 석굴암(2010, 픽션) 등 우수상을 거쳐 2011년 마음의 집이 첫 대상(논픽션)을 거머쥐었다.

올해는 우리 그림책이 라가치상 전 부문(4개)을 석권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측이 지난주 발표한 50회째 심사 결과 한국 작품 5편이 4개 부문에 입상했다. 이들 작품은 다음달 말 개막되는 도서전에서 전 세계 출판인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 도서전에는 해마다 70~80개국 1300여 출판사가 참가한다.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최근엔 20~30대 여성들의 그림책 수요도 늘고 있다. 1990년대 어린이 그림책 세대인 이들이 새로운 독자층으로 자리 잡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6개월째 종합베스트셀러를 지키며 색칠놀이 붐을 일으킨 어른용 그림책 비밀의 정원 덕분에 색연필과 물감이 평소의 두세 배나 팔리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마냥 좋아라고만 할 일도 아니다. 얼마 전 ‘그림책 현주소’ 관련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여러 과제를 지적했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픽처북’ 코너를 따로 운영하는데 왜 우리는 아직 그림책을 독립 장르로 대접하지 않을까. 그림 솜씨는 좋은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은 왜 부족할까. 왜 가난과 부, 약자와 강자,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될까. 대부분의 소재는 왜 과거지향적일까. 아이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도 그렇다. “우리 그림책엔 왜 아파트가 거의 없어요?”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