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일가족 살해' 용의자 문경서 검거…실직 가장이 저지른 비극
서울 서초동 자신 소유의 아파트에서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하고 도주했던 강모(47)씨가 경북 문경에서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는 이날 오전 6시 30분께 자신의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를 걸어 "내가 아내와 딸을 죽였다"며 "우리집에 가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를 받은 서초소방서 구급대원들은 급히 강 씨의 집으로 향해 거실에서 숨진 아내 이모(43)씨와 각각 작은 방과 안방에서 숨진 큰딸(14)과 작은딸(8)을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강 씨가 머플러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현장에선 강 씨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도 발견 됐는데, 여기에는 "부모님보다 먼저 가는 것도 죄송한데 집사람과 애들까지 데리고 가는 죽을죄를 지었다. 나는 저승에 가서 죗값을 치르겠다"고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강 씨는 실직 후 마지막 보루로 삼았던 주식투자마저 실패하자 절망하며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30분 사이 아내와 두 딸을 잇따라 살해한 뒤 도주해 충북 대청호에서 투신을 시도하고 흉기로 손목을 긋는 등 최소 두 차례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결국 이날 낮 12시 10분께 경북 문경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비극의 시작은 3년 전 컴퓨터 업체에 다니던 강 씨가 실직하면서였다. 강 씨는 가족 중 아내에게만 실직 사실을 알린 뒤 백방으로 새 직장을 물색했지만, 40대 중반 남성에게 취업시장의 문은 좁기만 했다.

강 씨는 두 딸에게 직장을 잃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실직 후 2년간 선후배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다. 그는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어지자 최근 1년간은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에 고시원을 얻어 낮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도 강 씨는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고집하며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결국 모아놓은 돈이 바닥을 보이자 강 씨는 2012년 11월께 자신이 살고 있던 대형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빌려 마지막 도박에 나섰다. 주식투자 대박으로 재기하겠다는 꿈을 꿨던 것.

경찰 관계자는 "강 씨는 대출금으로 아내에게 매달 400만원씩 생활비를 주고 나머지는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며 "하지만 성공적이지 못해 2년여가 지난 현재 남은 돈은 1억 3000만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생활비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4억원 중 2억7000만원을 날린 것이다.

경찰은 "강 씨는 2004년 5월께 이 아파트를 구입했고 현재 시가는 대략 8∼10억원 수준"이라며 "5억원 외에 다른 빚도 없는 상태여서 집을 팔고 생활수준을 낮추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씨는 온 가족이 죽는 쪽을 택했다. 이에 경찰은 강 씨가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탓에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고 추측하며 "양쪽 부모는 모두 강 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강 씨가 가족을 살해한 뒤 충북 청주, 경북 상주, 경북 문경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해할 수 없는 동선을 보인 까닭도 정신적 공황 상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찰은 "강 씨가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온 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달렸다"면서 "그는 심지어 자신이 검거된 장소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 "절대적으로는 생활고라고 볼 수 없으나, 스스로 그 이전의 생활수준이나 교제하던 이웃, 같은 부류였던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박탈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남은 것은 몰락뿐이란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강 씨가 자존감 하락을 견디지 못하는 등 성격적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고, 대인·사회관계 폐쇄성 등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