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색창연한 시탕의 풍경. 중국국가여유국 제공
고색창연한 시탕의 풍경. 중국국가여유국 제공
양쯔강 남쪽을 지칭하는 강남(江南) 지역의 난징(南京), 쑤저우(蘇州), 항저우(杭州) 일대에는 수향(水鄕)이 곳곳에 있다. 강의 지류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강남 수향(江南水鄕)으로 불리는 이 마을들의 역사는 약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운하로 연결된 물길을 따라 번성한 옛 자취는 지금까지도 진하게 남아 있다.

시탕, 가장 크고 화려한 물의 고장

좁고 긴 시탕의 뒷골목 풍경.
좁고 긴 시탕의 뒷골목 풍경.
명청(明淸) 시대의 건축물이 남아 있는 저장성(浙江省)의 시탕(西塘)은 강남수향 중 가장 고색창연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기와지붕이 서로 겹치고, 돌다리가 아치를 그리는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영화 ‘미션 임파서블3’에도 등장했다.

이곳에는 여행자를 위한 유람선이 운하를 누빈다. 강 입구에서 유람선에 오르자 예닐곱 명이 타는 아담한 나룻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공이 노를 젓는대 로 누각을 지나 마을 입구에 이르자, 아낙들이 수로에서 빨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빨래터는 예전에 집집마다 가지고 있던 조각배들을 댔던 선착장 자리다. 그 옆으로 가마우지를 태운 낚싯배가 보였다. “가마우지를 훈련시켜 고기를 잡는 어부입니다. 좁은 수로에 그물을 칠 수 없어서 가마우지로 낚시를 하는 겁니다. 10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방식입니다.” 가이드가 설명했다. 전기와 수도가 들어온 현대에도 그들은 옛날 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선착장에 내려 길로 들어서니, 거미줄처럼 촘촘한 골목마다 상점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지도를 보니 시탕에는 ‘전(前) 상하이 부시장 저택’ ‘술 문화 박물관’ ‘단추 박물관’ 등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 많다. 100위안의 시탕 입장료에는 이런 박물관들을 비롯한 11개 관광지의 입장료가 포함돼 있다. 취향에 맞춰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그중 백미는 끈목 단추부터 동물뼈 단추까지 볼 수 있는 단추박물관이었다. 한나라 때 시작된 시탕의 단추 산업은 명청대 황실 납품과 함께 번성했고 현재는 전국 단추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박물관 투어를 즐기는 사이, 금방 날이 저물었다. 시탕의 밤은 낮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곳곳에 홍등이 켜지자 붉은빛과 검푸른 물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중국 전통 현악기 얼후(二胡)가 울릴 법한 풍경이지만, 곳곳에서 라이브 바와 클럽의 음악이 들려왔다. “춘추의 물, 당송의 마을, 명청의 건축 그리고 현대인”이라는 말로 시탕을 묘사했던 어느 안내 책자의 문구가 떠올랐다.

안창, 때 묻지 않은 수향 마을의 묘미

안창의 물레 젓는 노인.
안창의 물레 젓는 노인.
시탕에서 남서쪽으로 143㎞ 떨어진 안창(安昌)은 상업화의 손길이 덜 미친 곳으로 면적 1.2㎢의 인적 드문 시골 마을이다. 수향 관광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들어서야 관심을 받고 있다. 떠나기 전 찾아본 여행 책자와 관련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아서, 미개척지를 가듯 설레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중국식 소시지인 라창(臘腸)이 널려 있다. 신기한 마음에 셔터를 눌렀더니, 라창 장수가 별 걸 다 찍는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상업화되지 않은 시골 마을답다. 돼지 뒷다리살과 비계를 창자에 넣어 만든 라창은 안창 제일의 특산품. 상인은 겨울에 만든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설명했다.

좁고 긴 시탕의 뒷골목 풍경.
좁고 긴 시탕의 뒷골목 풍경.
안창에는 공식적인 유람선 선착장도 없다. 물길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조각배를 불러 세워 40위안의 뱃삯을 치르고 타면 그만.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 노를 젓는 방식이 이곳 배의 독특한 점이다. 그 모습이 신기해 가까이 다가가니, 사공의 발놀림이 기예를 뽐내듯 점점 빨라졌다.

안창에서는 거리의 상점들이 주요 볼거리다. 옛날 이발소, 항아리 가게, 광목 가게, 생선 말리는 가판 등 평범한 시골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네 1980년대 풍경 같으면서도 처음 보는 물건들이 많아 낯선 매력이 가득했다. 물가에서는 물레 젓는 노파, 수석 깎는 노인 등 장인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준비된 장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전체적인 정취가 소박해서인지 그마저도 정감이 갔다.

익숙한 듯 낯선 수향의 모습은 때론 산수화처럼 때론 풍속화처럼 다가왔다. 그림 같던 그 풍경은 지금도 마치 몽환경(夢幻境)처럼 각인됐다.

여행 정보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자산(嘉善)까지 버스가 운행되며, 자산에서 5분 간격으로 시탕행 버스가 출발한다. 숙소는 대부분 우리나라 민박 정도의 시설이며, 골목골목 분포돼 있다.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수변을 따라 늘어선 객잔. 성수기 주말에는 1박에 600위안 정도까지 가격이 오른다. 안창의 경우 항저우 동역에서 사오싱(紹興) 북역까지 철도로 이동해 ‘사오싱 국제호텔’ 부근에 자리한 ‘사오싱 구터미널’에서 118번 버스를 타면 된다.

배차는 5분 간격이며, 막차는 오후 8시다. 한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므로, 숙박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시탕(중국)=글·사진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