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도 안 좋은데 내 자리 흔들리나…연말 인사철 앞둔 재계 긴장감 팽팽
지난해 핵심 보직에서 밀려난 한 대기업 부사장 A씨는 올해 본사 복귀 및 승진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당연히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A부사장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칫 자신이 승진을 위해 소문을 흘리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다. 그는 “임원 인사는 발표 전날에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며 “방 붙을 때까지는 몸사리고 있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대기업의 연말 인사철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재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실적 부진, 오너가(家)의 경영승계 등의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예년에 비해 인사 시기가 빨라지고 인사 폭도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기업 임원들이 좌불안석이다.

◆실적, 오너 변수에 긴장감 ‘팽팽’

최근 실적난에 허덕이는 기업들은 인사철이 다가올수록 뒤숭숭한 분위기다. 예년보다 인사를 앞당기려는 기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내년 경영환경도 올해 못지않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인사 시기를 앞당겨 고삐를 바짝 죄려는 의도에서다.

삼성그룹은 최근 임원들에 대한 인사평가를 마무리하고 인사 폭을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의 실적이 워낙 안 좋은 만큼 대대적인 인사로 분위기 쇄신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도 정유·통신 등 주력사업이 실적부진에 빠져 대규모 인사를 예고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최근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핵심 사업 부진으로 공격적인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대규모 인사가 단행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화와 포스코도 연초에 실시하던 임원인사를 올해는 12월 말로 당겨서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 3분기 2조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최근 임원을 30% 이상 줄이는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기아차는 인사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중론이 모아지고 있다. 엔저 여파로 실적이 부진하지만 미국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판매기록을 세우는 등 선전했다는 이유에서다.

오너들의 근황도 연말 인사의 중요한 변수로 거론된다. 삼성은 심근경색으로 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분위기 쇄신을 위해 대규모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실적쇼크로 가라앉은 그룹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고 스마트폰 이후를 책임질 신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임원 진용을 다시 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고 말했다.

한화그룹도 김승연 회장의 경영복귀 시기가 내년 초로 거론되면서 적지 않은 규모의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반면 효성그룹은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어서 인사 시기가 예년보다 미뤄질 전망이다.

◆몸사리기형 등 대응도 각양각색

인사철을 앞둔 임원들의 움직임도 각양각색이다. 대다수는 몸사리기에 여념이 없다. 외부 인사와의 골프나 식사 약속도 최소한으로 줄이는 분위기다. 반면 자신의 성과나 인맥을 넌지시 알리며 ‘세 과시’에 나서는 사례도 없지 않다. C기업의 한 인사는 “모시는 전무님이 최근 유달리 자신과 오너경영인과의 친분을 많이 얘기하고 다닌다”고 전했다. 임원들의 해외 출장이 최근 유독 잦아지는 것도 연말 인사를 겨냥해서라는 지적이다. ‘일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다.

재계 관계자는 “연말에 각종 신제품이 많이 출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관련 부서나 책임자 등이 인사철을 앞두고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남윤선/박영태/정인설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