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수 알서포트 대표(가운데)가 서울 송파구 방이동 본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스마트폰 원격제어 프로그램 ‘모비즌’을 소개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서형수 알서포트 대표(가운데)가 서울 송파구 방이동 본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스마트폰 원격제어 프로그램 ‘모비즌’을 소개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07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최한 세계 대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세종대 컴퓨터동아리 ‘엔샵605’가 2등을 차지했다. 이들이 선보인 건 ‘핑거코드’라는 특수장갑. 음성신호를 문자로 바꾼 뒤 다시 진동으로 변환해 시청각 장애인에게 전달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혔다.

7년 뒤인 올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핑거코드와 흡사한 ‘핑거리더’라는 시각장애인용 특수 반지를 개발했다. 이 반지는 곧 상용화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세계에서 통할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은 많다. 그러나 글로벌 무대에 도전해 안착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시장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 낯선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길이다.

工高 나와 SW ‘주경야독’…보안벤처 하우리에서 연구소장
원격제어 SW개발업체 창업…홈 트레이딩 AS에 적용해 ‘대박’
창업 3년째부터 해외 진출…25개국 6000개 기업이 고객


2003년, 창업한 지 갓 3년 된 벤처기업 사장이 서류가방 하나만 달랑 든 채 일본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 최대 통신회사를 상대로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러 가는 길이었다. 당시 한국 소프트웨어 역량은 일본보다 한참 떨어진 걸음마 수준이었으나 그는 자신만만했다.

10년 전 이 ‘겁 없는’ 벤처기업 사장이 서형수 알서포트 대표(44)다. 알서포트는 원격으로 PC나 서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다. 2001년 서 대표가 창업했다.

13년 전 조그만 벤처는 지금 원격제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아시아 1위, 세계 5위 기업으로 컸다.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해 해외 25개국 6000여개 기업이 이 회사 고객이다. 서 대표는 “초기부터 해외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알서포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고졸 출신 ‘공돌이’, 소프트웨어에 도전하다

서 대표는 부산공고 졸업 직후 열아홉 살이던 1988년 금성사(LG전자) 창원 제2공장 자재부 구매과에 입사했다. 당시 사무실에 PC 한 대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다룰 줄 몰라 구석에 방치돼 있었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고졸 신입사원은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개발자로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1990년 경남정보대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공부했다. 1996년 대학 졸업 후 조그만 벤처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했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얼마 안돼 회사가 문을 닫았다. 고민 끝에 그는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1998년 하이드로소프트라는 회사를 세워 자산관리 솔루션 등을 개발했다. 이때 만든 소프트웨어가 입소문을 타면서 그는 보안전문 벤처 하우리에서 “연구소장으로 와달라”는 영입 제의를 받았다.

하우리에서의 경험은 그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당시 하우리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 PC에 문제가 생기면 전산 담당자가 직접 방문하는 대신 원격으로 컴퓨터에 접속해 해결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서 대표는 여기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2001년 11월 하우리를 나온 그는 알서포트를 창업했다.

○겁 없는 세계무대 도전, 펜타곤을 뚫다

서 대표는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온라인 증권거래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증권사 홈트레이딩 시스템이나 은행 인터넷뱅킹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때 상담원이 고객 전화를 받아 원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대박’을 치겠다고 본 것. 그래서 개발한 것이 ‘리모트 콜(원격전화 시스템)’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증권사 콜센터들이 앞다퉈 알서포트의 서비스를 도입했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게 되자 서 대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규모가 뻔한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에 만족할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일본 진출이다. 그는 “보안성을 철저히 따지는 일본 시장만 뚫으면 세계 어느 시장에도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2003년 일본 최대 통신기업 NTT그룹에 수출 계약을 타진했다. 그러나 일본 진출은 험난했다. NTT그룹 자회사 NTT데이터는 서 대표에게 두꺼운 사전 분량의 기술 입증 자료를 요구했다. 조그만 한국 벤처의 기술력을 믿지 못해서다.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도 2년이나 반복했다.

“이대로 돌아갈까”란 생각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무조건 해외시장을 뚫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러기를 2년여, 2005년 9월 NTT데이터 임원이 서 대표를 불러 손을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서 대표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험을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알서포트의 첫 수출이 성사된 순간이었다.

○“100년 가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이 목표”

[경제 대도약] 日 NTT 벽 2년 만에 뚫으니…美 펜타곤, 먼저 수출 타진
한번 수출시장을 뚫고 나니 알서포트의 인지도는 급속도로 높아졌다. 2007년 미국 국방부(펜타곤)에서 연락이 왔다. 세계 각지에 주둔해 있는 미군 PC를 관리하는 원격지원 시스템 경쟁 입찰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서 대표는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현장에선 ‘미국이 자국군 PC를 해외 기업에 맡기겠느냐’ ‘이미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이 낙점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6개월간 진행된 제품 테스트에서 알서포트는 입찰 업체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소프트웨어 종주국’으로 통하는 미국 시장에서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가 기술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알서포트의 지난해 매출은 215억원. 아직은 작은 규모지만 매년 20% 이상 매출이 늘고 있다. 연매출의 50%가량은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 올릴 정도로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다. 서 대표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 서형수 알서포트 대표는

△1970년 출생 △1996년 경남정보대 졸업 △1998년 하이드로소프트 창업 △1999년 하우리 연구소장 △2001년 알서포트 연구소장 △2005년 알서포트 대표이사

■ 특별취재팀=이태명 팀장, 정인설(산업부) 전설리(IT과학부) 윤정현(증권부) 박신영(금융부) 전예진(정치부) 김주완(경제부) 임현우(생활경제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양병훈(지식사회부) 기자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