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이 녹조를 이용한 플라스틱 생산에 사용된 숙신산, 코리네균주, 미세조류 등의 재료를 소개하고 있다. KIST 제공
우한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이 녹조를 이용한 플라스틱 생산에 사용된 숙신산, 코리네균주, 미세조류 등의 재료를 소개하고 있다. KIST 제공
우한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의 고향은 울산이다. 활어회를 좋아하는 그는 고향 근해에서 잡힌 어족의 변화를 통해 지구 온난화를 피부로 느껴왔다. 바다뿐만이 아니다. 포도 경작지도 영남 내륙에서 점차 해안지역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포도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야 당도가 높다. 지구 온난화로 영남 내륙의 밤이 더워지면서 경작지가 좀 더 시원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 선임연구원은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를 막을 방법을 궁리했다. 미생물 공학자로서 그가 택한 방법은 미세조류와 박테리아를 이용한 플라스틱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것. 플라스틱을 석유 대신 식물에서 뽑아낼 수 있다면 지구 온난화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해외 독점 기술로부터 독립

식물에서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방식은 기존에도 있었다. 옥수수 감자 등 전분계 바이오매스(에너지원으로 활용되는 생물체)로부터 원료를 얻기가 가장 쉬웠다. 문제는 전분계 바이오매스 대부분이 식량자원이라는 것.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나무 등 목질계 바이오매스와 잡초 억새 등 초본계 바이오매스였다. 하지만 이 역시 걸림돌이 적지 않다. 우선 플라스틱 원료를 얻기 위해서는 비식용 바이오매스를 분해하는 전처리 기술이 필요한데 이게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전처리 후에 들어가는 당화 효소의 수급도 쉽지 않다. 관련 기술을 덴마크 기업 노보자임이 독점하고 있어 로열티 비용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우 선임연구원은 아예 새로운 원료를 찾기로 했다. 2013년 초 그는 미세조류에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다른 바이오매스를 키우기 위해선 석유 재처리를 통해 생산된 화학비료가 필요했다. 반면 녹조 등 미세조류는 햇빛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육상 바이오매스보다 다섯 배 빠르게 번식한다.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해 환경친화적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녹조를 플라스틱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생산하기 위해선 두 종류의 생물을 함께 키워야 했다. 미세조류와 박테리아.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미세조류를 키우고 이를 다시 박테리아에 먹인다. 미세조류를 먹은 박테리아는 소화 과정에서 플라스틱의 원료인 숙신산을 생산한다. 숙신산을 가공하면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논에다 사료작물을 키우고 이를 다시 젖소에게 먹여 우유를 얻는 과정과 비슷하다.

숙신산을 만드는 데는 CJ나 대상 등 식품업계에서 널리 이용하는 박테리아인 코리네박테리움 글루타미쿰 균주가 사용됐다. 다른 박테리아를 이용하면 아크릴산 등 다양한 플라스틱 원료를 만들 수 있다.

우 선임연구원은 “한강에 낀 녹조도 이 기술을 이용하면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역시 미세조류의 먹이로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녹조와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해답 찾아

신기술 개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세조류가 만들어낸 탄수화물을 박테리아가 잘 먹지 못했던 것. 미세조류 배양은 협업팀인 심상준 고려대 교수팀이 잘 해주고 있었지만 정작 우 선임연구원팀은 헤매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고심한 그는 유전자 조작에서 해답을 찾았다. 코리네박테리움 글루타미쿰 균주의 DNA를 조작해 식성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단당류만 먹던 박테리아를 다당류인 전분까지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실험 결과는 사흘 뒤에 나왔다. 대사공학에 관한 논문을 읽고 있던 우 선임연구원은 기쁜 표정으로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조교를 통해 성공을 직감했다. 박테리아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숙신산의 생산효율은 두 배가 됐다. 연구 논문은 지난 7월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