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반올림' 협상이 겉도는 이유
“반올림이 왜 협상 주체가 되려고 하는지, 그게 왜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묻고 싶어요.”

지난 3일 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송창호 씨(44)의 목소리에는 노동인권단체 반올림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났다. 낮에 있었던 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날 낮에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가족 간 7차 교섭이 열렸다. 그간 여섯 차례 교섭에서 피해자 가족대표 8명은 반올림이란 이름 아래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날은 8명 중 송씨를 포함한 6명이 반올림에서 떨어져 나와 ‘가족대책위’란 이름으로 테이블에 앉았고 반올림은 반올림대로 단체 내 활동가 중심으로 새 협상단을 꾸렸다. 결국 협상 주체가 누군지 따지다 대부분 시간을 허비했고 교섭은 아무 소득 없이 끝났다. 송씨가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유다.

송씨는 1993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 입사해 5년6개월간 근무했다. 퇴사한 9년여 뒤 반도체 직업병으로 불리는 혈액암에 걸렸고 지금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이런 그에게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공론화한 반올림은 고마운 존재였고 그는 2008년부터 반올림과 함께 삼성에 피해 보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지난 5월 삼성이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 협상에 나선 뒤부터 송씨는 반올림을 다시 보게 됐다. 반올림이 가족에 대한 보상보다 ‘삼성과의 싸움’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보상 방식 문제다. 반올림은 삼성에 산업재해(산재) 신청자 33명 전원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협상 참석자 8명과 논의해 보상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피해자에게 보상하자는 입장이다. 송씨는 “우리도 우리만 보상해 달라는 게 아니고 삼성도 그런 생각이 아닌데 반올림은 무조건 자기 의견대로만 가려고 하니 대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송씨도 삼성을 철석같이 믿는 것은 아니다.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보상에서 제외되는 피해자가 생길 수 있어서다. 그러면서도 그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의 아픔은 우리가 활동가들보다 더 많이 알지 않겠느냐. 반올림이 전향적 자세를 보여달라”고 했다.

주용석 산업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