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열린 소프트웨어 교육 토론회에는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왼쪽 다섯 번째부터),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유진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등 과학계 리더들과 정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신경훈 기자 nicepeter@hankyung.com
지난 23일 열린 소프트웨어 교육 토론회에는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왼쪽 다섯 번째부터),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유진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등 과학계 리더들과 정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신경훈 기자 nicepeter@hankyung.com
정부가 소프트웨어(SW) 중심사회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교사 양성, 학교 구형PC 교체 등에 필요한 예산(2000억원 추정) 배정은 미루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내년부터 중학교에서 SW를 필수로 가르치는 내용의 ‘소프트웨어 중심사회 실현 전략’을 지난달 말 발표했다. SW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디지털시대 흐름에 더이상 뒤처져선 안 된다는 인식에서다. 그러나 과학계에선 정부가 거창한 선언만 내놓고 정책 추진을 위한 뒷받침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박성현)과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3일 연 토론회에서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 서정연 한국정보과학회 명예회장(서강대 교수) 등 과학계 리더들은 이런 우려를 쏟아냈다. 토론회 사회는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IT과학부장이 맡았다.

◆SW 손 놓으면 일자리도 준다

SW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면 일자리까지 줄어들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토론회 참석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김 소장은 “정보화시대 첫 단계가 통신을 통해 소통을 확대하는 단계였다면 이젠 SW로 각종 기능을 자동화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며 “앞으로 많은 직업이 없어지는 등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진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SW 능력에 따라 빈부와 세대 간 격차가 커지는 ‘소프트웨어 디바이드(divide)’를 막기 위해서도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SW는 가급적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서 명예회장은 “국제경진대회에 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서울대 KAIST 대표보다 중·고생들이 더 잘할 때가 많다”며 “영어도 어릴 때 배워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듯이 SW도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게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안성진 한국컴퓨터교육학회 명예회장(성균관대 교수)은 “자연과학 화학 생명공학 등에서도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게 관건”이라며 “이제 SW를 모르면 다른 학문도 발전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美 진출한 인재들 고액 연봉

상당수 SW 개발자는 산업계의 고질적 재하도급 구조 때문에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SW를 3D 업종이라고도 분류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SW 조기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SW 개발자를 설계, 기획, 프로그래밍 등 역할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지난주 구글을 방문했는데 KAIST 출신만 수십명이 일하고 있었다”며 “SW를 건설에 비유하면 설계자부터 벽돌 나르는 인부까지 다양한 일이 있는데 설계와 기획을 잘하는 인재는 구글 삼성전자에서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문수복 KAIST 전산학과 교수는 “학생 중에는 방학 때 해외에 나가 인턴으로 일하면서 월 8000달러씩 벌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변화를 감지한 영국은 올 가을학기부터 SW 교육을 수학 과학과 같은 필수과목으로 가르칠 예정이다.

◆교사 양성, 실습실 투자 시급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정보화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SW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박성현 과학기술한림원장은 “SW 교육 대중화에 속도를 내려면 초·중·고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대학 입학 때도 혜택을 줘야 한다”고 했다. 안 회장은 “SW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은 단순 문법이 아니라 사고력 논리력과 관련된 컴퓨터과학적 사고”라며 “최근 SW를 기술·가정 과목의 한 단원으로 넣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전문 교사가 가르치지 않으면 교육 의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교사 확보와 실습실 투자가 꼽혔다. 박제윤 교육부 창의인재정책관은 “SW를 필수 과목으로 만들어 1단위(주당 1시간 교육)씩 교육 시간을 늘릴 때마다 교사 1000명이 필요한데 신규 교사 채용 없이 기존 교사들로 대체하려면 학교 현장에서 많은 반발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봉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은 “2018년 교육과정이 바뀌기 전에라도 시범학교 선정, 교원 연수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 마련은 쉽지 않다. 이창윤 미래부 미래인재정책과장은 “예산 당국에선 ‘미래부가 왜 교육을 지원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교육부 예산도 크게 늘려주지 않아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