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 변호사가 자신이 몸담았던 재판부의 사건을 대리한 것이 문제가 돼 담당 재판부가 바뀌고 선고 직전까지 갔던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대기업의 서버를 관리하는 계열사 P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에 의한 시정명령 및 10억2000여만원 과징금 납부명령을 받자 취소 소송을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에 사건을 맡겼다.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에 배당됐고 당시 A씨는 여기서 로클럭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후 A씨는 변호사로 등록해 태평양에 입사했는데 태평양이 2회 변론기일부터 A씨를 이 사건에 본격투입하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변호사법 제31조 1항 3호는 변호사가 공무원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게 된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로클럭이 이 법 조항의 ‘공무원’에 해당하는지, 로클럭의 재판 보조 업무가 ‘직무상 취급한’ 사건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법조계 내 해석이 분분하기는 했다. 2011년 5월 신설된 같은 조 3항은 법관 등에서 퇴직해 1년간 사건수임 제한을 받는 ‘공직퇴임변호사’에서 로클럭을 제외한다고 규정, 혼선을 부추겼다. 피고인 공정위 측은 “해당 재판부에 속했던 로클럭이 변호사로 나선 것은 사건에 대한 증거나 정보 등에서 유리할 것”이라며 “태평양 측의 변론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근 법무부는 “소속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은 로클럭이 직무상 취급해야 했던 사건에 해당하므로 로클럭은 제31조 1항 3호의 공무원으로서 담당변호사로 지정될 수 없다”고 유권해석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태평양 측은 지난 23일 A씨에 대한 변호사 지정 철회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서울고등법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담당재판부를 교체하고 선고 직전까지 갔던 재판을 변론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법원 관계자는 25일 “앞으로는 로클럭 출신 변호사의 경우 사건 수임이 정당한지 법원에서 접수하는 단계부터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태평양 측은 “최근 로클럭 출신 변호사가 수임하는 사건을 둘러싸고 전관예우 논란 등 문제가 제기되면서 사건에서 손을 뗀 것”이라고 해명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