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약 제조업체 우성아이비가 개발한 접이식 소형보트.
카약 제조업체 우성아이비가 개발한 접이식 소형보트.
‘독일 BMW의 기술 지원을 받은 미국팀, 고급 스포츠카 제조회사 페라리가 후원한 이탈리아팀, 슈퍼카 브랜드 맥라렌을 등에 업은 영국팀….’

지난 2월 2014 소치동계올림픽 봅슬레이 경기는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 경연장이었다. 봅슬레이 썰매는 첨단 항공기에 쓰이는 탄소복합 소재로 제작된다. 속도 경기이기 때문에 공기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기역학 기술이 필수다. 각국 대표팀이 썰매 제작에 글로벌 기업의 기술 지원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포츠 경쟁은 첨단기술의 경쟁’이란 말도 그래서 나온다. 소치올림픽에서 유로테크가 만든 썰매를 썼던 대한민국 봅슬레이팀은 어느 업체의 기술 지원을 받을까. 대한항공이 그 주인공이다.

대한항공, BMW·페라리와 경쟁

[가자! 스포츠 산업 강국] 봅슬레이 더 빠르게…대한항공·BMW·페라리 'R&D 올림픽'
대한항공은 지난 4월 한국체대, 성균관대, 인하대 등과 함께 산학협력단을 구성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봅슬레이 국가대표들이 탑승할 2인승, 4인승 썰매의 동체와 봅슬레이 날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올해 하반기 시제품을 내놓은 뒤 2015년 1차 테스트를 마칠 계획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썰매를 계속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다. 대한항공이 봅슬레이 대표팀을 통해 BMW 페라리 맥라렌 등과의 경쟁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에 따르면 대한항공 이외에 현대자동차도 봅슬레이 썰매 제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의 기술개발은 대기업이 스포츠 연구개발(R&D)에 나선 대표적인 사례다.

전병화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산업과 R&D 담당 사무관은 “정부가 지원하는 R&D 예산도 늘어나야겠지만, 대한항공의 사례처럼 스포츠산업에 대한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치추적 구명조끼, 공기주입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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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있는 구명조끼 제작업체 티모도 R&D에 주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위성항법장치(GPS)가 장착된 구명조끼를 개발했다. 이 조끼는 위치추적을 통해 조난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 구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물속에서의 저체온증을 예방하기 위해 원단 속에 발열재를 장착했다. 티모는 이 사업을 하기 위해 2011년 8월 상명대 스포츠산업연구소와 함께 3년간 30억원을 지원받았다.

티모의 GPS 구명조끼 개발은 세월호 침몰 참사로 수상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스포츠 R&D가 안전사고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손미향 티모 사장은 “단순 생산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한 R&D로 10건이 넘는 특허를 따냈다”며 “미국 수출까지 이어지고 있어 연간 매출이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약제조 업체 우성아이비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접이식 소형보트를 만들었다. 이 보트는 보통 나무나 플라스틱 소재로 만드는 카약과 다르다. 갖고 다니기 쉬운 공기주입식이다. 공기주입 기계를 사용하면 수십초 내에 보트모양을 갖출 수 있다. 원단의 상하 구조에 수십만 가닥의 폴리에스테르 실 조직을 짜 넣어 보트가 둥그런 모양이 아니라 각진 모습을 유지한다. 임이영 우성아이비 부사장은 “보트의 수평력 유지에 탁월한 성능을 갖춰 상용화 제품이 완성되면 유럽, 미국시장에서 큰 관심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제품은 내달 미국의 수상레저용품 박람회에 출품된다.

연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 투자

스포츠 R&D를 통한 우수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스포츠 관련 기업의 90%가량이 종업원 10명 미만의 영세업체이기 때문에 R&D는 물론 판로 개척을 위한 해외 마케팅 등 기술 상용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체부는 올해 스포츠산업 기술 R&D에 고작 87억원을 투입한다. 수년째 100억원 밑을 맴돌고 있다.

오일영 상명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의 R&D 투자는 연간 2조원에 달한다”며 “연 16조원 수준인 정부의 R&D 예산 중 스포츠 기술개발 투자는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데 이는 스포츠산업의 융·복합 기술 개발을 이루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