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선 기자
남윤선 기자
“제 나름의 기업관을 갖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있다면, 설령 LS와 경쟁하는 기업이라도 과감히 투자할 겁니다.”

‘LS가(家)의 장손’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사진)는 거침이 없었다. 포메이션8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톱25’ 벤처캐피털의 하나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페이스북에 20억달러에 팔린 오큘러스VR 투자로 10배 넘는 수익을 올린 데 이어 지난주 리레이트아이큐(RelateIQ)가 세일즈포스닷컴에 3억9000만달러에 매각되면서 또다시 다섯 배가량 수익을 얻었다.

한국 벤처를 둘러보기 위해 귀국했다는 구 대표는 14일 요즘 투자 대상 물색과 함께 포메이션8의 두 번째 펀드 출범을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2012년 만든 4억4800만달러 규모의 첫 번째 펀드가 20여개 기업에 대부분 자금을 집행해서다.

연이은 대박으로 두 번째 펀드엔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줄을 섰다. 그는 그러나 “펀드가 커지면 큰 수익을 노려야 하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초기 투자가 어렵고, 투자 기회도 놓칠 수 있어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첫 번째 펀드엔 LS(5000만달러), KT, CJ E&M 등 국내 대기업과 기관이 투자액의 20% 정도를 댔다. 그는 두 번째 펀드에는 한국 투자를 10% 이내로 줄일 계획이다.

구 대표는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외아들이자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그는 “LS가의 장손이다 보니 다른 한국 대기업과 협의할 때 껄끄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독립된 펀드의 경영자로서 LS와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생각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2002년 미국에 간 그가 어떻게 금세 미국 실리콘밸리의 큰손으로 떠올랐을까. LS가 배경에 스탠퍼드대 MBA, 그리고 6년째 벤처캐피털 밥을 먹으며 쌓은 인맥 덕분이다. 포메이션8은 여덟 명의 파트너가 만들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기디언 유, GE에서 벤처그룹을 만든 짐 킴, 페이팔마피아 중 한 명인 조 론스데일 등이 그들이다.

이 같은 인맥을 통해 기회를 잡은 리레이트아이큐는 영업 인력의 스마트폰, 이메일 등 모든 기록을 자동으로 분석해 인맥을 관리해주는 회사다. 이번 매각으로 많은 수익을 거뒀지만, 그는 아쉬워한다. 인수기업인 세일즈포스닷컴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 수 있는 회사가 리레이트아이큐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 대표에게 LS에서 일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저는 제 방식으로 신사업을 발굴하고 있고, 대기업으로까지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는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에너지 트레이딩 소프트웨어), 아카스터디(교육프로그램 인공지능화) 등 한국 벤처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 벤처는 열정과 노력, 실력 면에서 미국 벤처 이상으로 뛰어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과 타협해 꿈을 작게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는 그는 아이 둘에게 유치원 때부터 코딩 교육을 하고 있다.

김현석/남윤선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