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통신사들의 '억지 춘향' 결의
“통신사가 (보조금 경쟁에) 나서지 않으면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먼저 일으킬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럴 여력도 없고요.”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20일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불법 보조금 근절 등 이동통신시장 안정화 방안’을 공동으로 발표한 직후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가 한 말이다. 이 단체는 전국 휴대폰 대리점·판매점 모임이다.

이날 공동발표는 통신 3사가 잇따른 보조금 경쟁으로 인해 45일씩의 영업정지 ‘철퇴’를 맞고 난 뒤 미래부가 급조해 마련한 자리였다. 각사 마케팅 임원은 직접 나서 공정경쟁 서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불법 보조금 지급 중단, 시장감시단 운영 등 내놓은 대책은 시장이 과열되면 늘 발표하는 내용과 다를 게 없었다. 휴대폰 출고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휴대폰 제조사가 결정할 일이다.

유독 대리점과 판매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만 명확히 했다. 불법 보조금 지급 등 위반행위를 저지른 유통점엔 전산 차단을 통해 판매중단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통신사 임원은 “대리점 간 가입자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며 슬쩍 유통망을 끼워넣었다.

애초에 이 자리는 미래부가 주도해 만들어졌다.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27만원 보조금 상한선’을 고집하는 미래부가 억지춘향 식으로 통신사를 부른 자리다. 무턱대고 대안을 강요했으니 쓸 만한 얘기가 나올 리 만무했다.

통신 3사가 시종일관 ‘건전한 경쟁’ ‘적극적 노력’ 등 공허한 단어만 부르짖는 가운데 영세 판매점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서울 강남역 인근의 휴대폰 판매점 사장은 “보조금 경쟁을 주도해온 통신사가 마치 아이 잘못을 사과하는 부모처럼 군다”고 꼬집었다.

그 자리에 소비자는 없었다. 미래부는 보조금에 기대지 않으면 스마트폰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된 소비자에게 현실적 제도를 마련해주는 대신 통신사를 불러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통신사는 보조금 경쟁의 책임을 동네 판매점들에까지 돌렸다. 이번 발표가 진정성 없는 촌극에 불과했던 이유다.

김보영 IT과학부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