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고급 주택가가 밀집한 서울 한남동.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에서 언덕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통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젊은 감각의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의 간판이 걸려 있는 곳은 이 건물 2층이다.

음식, 계절을 담다…공간, 한국을 담다…그릇, 예술을 담다
식당으로 한발 들어서자 마치 미술작품 속으로 뛰어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양한 색채의 중절모 모양 의자, 은은한 느낌을 주도록 한지로 장식한 벽 등은 독특한 멋을 풍겼다. 병풍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미닫이문과 목단을 떠올리게 하는 마루도 인상적이었다.

뭐 하나 평범하게 지나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내장식의 콘셉트부터 남달랐다. ‘한국의 의식주’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것도 유명 디자이너들이 분야별로 맡아서 작업한 공동 작품이다.

벽면의 한지 장식은 한복 브랜드 ‘차이킴’으로 유명한 김영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원목 느낌이 나는 식탁과 중절모 의자는 하지훈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마영범 디자이너는 전체 인테리어 배치를, 서영희 스타일리스트는 직원들의 유니폼을 디자인했다. 움직이기 편하면서도 전통적인 멋을 살린 복장이다.

사용하는 식기도 실내 분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청와대 국빈 접대용 식기로도 사용되는 ‘광주요 모던라인’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의 ‘천원지방’을 모티브로 만든 식기는 비채나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음식, 계절을 담다…공간, 한국을 담다…그릇, 예술을 담다
비채나는 ‘계절을 담은 한식’을 선보인다는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부분의 메뉴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계절에 맞는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서다. 평균적으로 70%의 요리가 계절마다 교체된다. 2년 전 매장을 처음 열 때 판매하던 요리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메뉴를 바꿀 때는 계절의 느낌과 특징을 고려한다고 한다. 봄에는 돋아나는 새싹을 표현한 상큼한 맛을 중심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보신음식을 많이 먹는 여름에는 사이드 메뉴를 속에 부담이 가지 않는 가벼운 음식으로 내놓는 식이다. 가을은 풍성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겨울은 진하고 깊은 맛으로 메뉴를 짠다.

김병진 총괄셰프가 준비해둔 몇 가지 음식을 내놨다. ‘전통의 맛이 살아있는 젊은 감각의 요리.’ 한 숟가락 입에 떠넣고 든 느낌이다. 퓨전 한식이라고 하기엔 한국 고유의 맛이 살아있고, 정통 한식이라고 하기엔 요리의 구성이 특이했다.

‘전통 한식의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이 비채나의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요리에 쓰이는 재료는 된장 청국장 명란젓 곤드레나물 양지머리 닭고기 보리죽 매생이 등 기존 한식 한상차림에 어울리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이 재료로 만든 메뉴는 색달랐다. 겨울 무를 새우젓에 절인 후 양지머리와 함께 속을 채운 ‘무 만두’, 남해에서 잡은 아귀를 구워내고 보리죽과 매생이를 곁들여 내놓는 ‘매생이 아귀구이’, 흑돼지 목살을 된장과 함께 청국장으로 양념해 4시간 동안 찐 ‘겨울 무 된장찜’, 김포의 쌀과 정선의 곤드레나물, 저염 명란젓을 함께 넣어 지은 ‘솥밥’ 등은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독창적인 메뉴였다. 이와 같은 단품 2~3가지와 솥밥을 시키면 2인 기준 15만~20만원 선에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음식, 계절을 담다…공간, 한국을 담다…그릇, 예술을 담다
한식을 풀코스로 맛보고 싶은 사람은 ‘비채나 테이스팅 메뉴’를 주문하면 좋다. 한우족편 만두 연근전 문어무침 아귀구이 굴무침보쌈 삼치조림 솥밥 등이 차례로 나오는 비채나의 대표 코스다. 생선과 고기 요리는 고객이 원할 경우 다른 것으로 바꿔서 내오기도 한다.

무 만두
무 만두
매장에 처음 들어가면 비좁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70여명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다. 10~13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프라이빗룸도 있다. 조용히 대화할 수 있어 주 고객인 정치인, 기업 최고경영자(CEO), 연예인 등은 프라이빗룸을 주로 찾는다. 최근에는 근처에서 공연을 보고 오는 젊은 커플, 이태원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외국인도 비채나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