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단말기 유통 개악법 해설
명동 땅 한 평이면 경북 봉화 임야 100만평을 살 수 있다. 같은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해도 승객들의 표값은 천차만별이다. 호텔 객실료도 그렇다. 다른 투숙객보다 거의 두 배를 지불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군가는 창밖으로 뛰어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심해도 좋다. 비싼 티켓이나 숙박료는 대체로 부자들이 낸다.

어떤 시장가격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고, 소비자 행동 패턴에 따라 다르고, 선호 강도에 따라 다르고, 판매자 계산에 따라서도 다르다. 교과서들은 그것을 가격 차별화라고 부른다. 차별적 가격은 어떤 사람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서로 다른 소비자와, 서로 다른 유보가격을 각자에게 대우하는 가장 정의로운 방법이다. 같은 제품이라고 해도 내심의 가격(유보가격)은 사람마다 다르다. 시장은 이를 통해 소비자 선호를 남김없이 반영하면서 효율적 분배를 만들어 낸다. 승자독식인 정치엔 사표(死票)가 존재하지만 시장은 마지막 1원까지도 모두 반영한다. 그 때문에 ‘시장에는 평화가 생겨나는 것’(칸트)이다. 이게 진짜 경제민주화다. 우리가 휴대폰 요금제도의 복잡성에 당혹감을 느낄 때, 신용카드의 그 복잡한 포인트 제도를 도통 이해할 수 없을 때, 비행기 티켓의 그 어처구니없는 할인제도 앞에서 좌절감을 느낄 때 명심해야 할 것들이 이런 점이다.

지금 국회에 제출돼 있는 소위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도 이런 경우다. 가격 차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뇌는 백치에 가깝고, 기업가를 깔보고 싶은 완장증후군은 고질병이며, 상인들의 장부를 빼앗아 직접 들여다보고 싶은 관료주의적 병폐가 바로 이 규제법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아비투스는 그렇게 낡은 사회주의적 권력기구로 신속하게 돌아가고 말았다. 공정한 유통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이 법 제9조는 휴대폰 제조사가 이통사와의 판매 계약을 거절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하고 있지만 계약 자유를 부정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다. 신상품을 출시하는 날 모든 이통사에 동등하게 상품을 뿌려야 한다는 거래 강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제조사가 장려금을 줄 때는 사업자와 대리점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차별적인 장려금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도 마찬가지다. 장려금은 매입량이나 결제조건, 소비자 특성과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판매자의 다양한 전략 조합이 가능하다. 이것이 마케팅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왜 점포마다 가격이 다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료들의 등쌀에 골목의 부지런한 판매업자일수록 필시 더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 법 12조는 전가의 보도인 자료 제출 의무화다. 왜 없나 했다. 이통사와 대리점 판매점 제조사는 판매 장려금의 규모와 출고가, 판매량, 매출 자료를 미래부 장관과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수익금 내역까지 보고토록 한 당초 안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지만 원가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유교적 관행이 몸에 배어 있다. 이렇게 노무현 정부가 아파트 원가 공개를 추진했던 그 퇴행적 관료주의가 급기야는 최첨단 정보기술(IT)업종에까지 확산되고 말았다.

당연하겠지만 강제조사, 시정명령, 과징금이 빠질 수는 없다. 방통위는 제조사의 사업장에 출입하여 서류 등 자료나 물건을 조사할 수 있고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력을 이 법에 또박또박 적어 넣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방통위까지 재벌을 때릴 수 있는 규제권력을 전리품으로 얻어 챙겼다. 단말기유통개선법은 소위 소비자를 위한 법이다. 그러나 법이 통과되고 나면 모든 고객이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객이 비싸게 사게 될 것이 확실하다. 지금은 일부 고객이 부당한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제 모든 고객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그렇게 바보들은 무언가를 보호한다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만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미래부는 그렇게 출범 1년이 안돼 과거로 돌아갔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