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골프백에 태극기 단 뒤로 클럽 집어던진 적 없어요"
“골프채와 사람을 이어주는 게 그립(클럽을 잡는 것)입니다. 공을 쳤을 때 공이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짓는 것도 그립이죠. 기본 중의 기본인 그립을 대충 대충하는 일반인 골퍼가 의외로 많습니다. 무엇이든 기본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개인이나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한국 남자골프의 ‘맏형’ 최경주 선수(43·SK텔레콤·사진)는 완벽주의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PGA투어에 진출해 통산 8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그는 18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 주최로 열린 ‘관훈초대석’에 초청 연사로 나서 자신의 골프 및 인생철학을 풀어냈다. 국내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의 초대석에 운동선수가 초대된 건 최 선수가 처음이다.

최 선수는 “고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골프부에 가입해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며 “어느 날 연습장에서 7번 아이언으로 공을 ‘땅’하고 쳤는데 야구 홈런 이상의 감동이 몰려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 스윙이 불쏘시개가 돼 골프에 대한 열정이 지금까지 불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도 어떤 분야든 불타는 열정이 있는지 자문해 보면 좋겠다”며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선수는 어린 시절 골프연습장 연습생으로 클럽과 공을 닦으면서 돈을 벌어 골프를 배웠다.

최 선수는 대충이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 없다고 했다. 그는 “오늘 할 연습을 한 번도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며 “연습을 많이 한 날은 팔을 움직일 수 없었고 달라붙은 그립을 입으로 뗀 적도 있다”고 전했다.

1997년 골프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을 때 ‘골프의 이상향’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미국 PGA투어에서 뛰어야겠다는 또 다른 불꽃이 마음속에 타올랐어요.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15시간 동안 PGA투어에 진출할 5년 계획을 세웠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독하게 공을 쳤습니다.”

2001년 PGA투어에 입성한 그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자신의 골프가방에 태극기를 달았을 때였다. 최 선수는 “태극기를 달고 나니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며 “공이 안 맞아도 한번도 채를 집어던진 적이 없고 누구를 만나도 웃으면서 ‘생큐’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골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왜 골프를 죽입니까.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이 왜 골프장에서 밥을 먹었느냐면서 증인을 죄인 취급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한국에서 골프 대중화는 뒤로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내년 하계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볼까요. 골프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는 골프 이미지 개선을 위해 “골프계도 대중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 누구나 큰돈 들이지 않고 골프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며 “골프장도 학생들이 소풍 올 수 있도록 개방하고 인근 지역 주민을 초대해 마을 잔치도 열면서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