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장날이다. 며칠 동안 봄날처럼 풀렸던 날씨가 심술을 부리며 속살까지 파고드는 한파를 몰고 왔다. 제주에 도착하니 하늘까지 잔뜩 찌푸려 쓸쓸한 바닷가에 칙칙한 풍경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기우였다.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고적하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지닌 우도의 매력만은 그대로였다.

소가 누운 모습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우도(牛島)는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최고의 관광지로 떠올랐다. CNN이 ‘한국 방문 때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꼽았고,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곳’에도 포함됐다.

그만큼 우도의 자연은 매력적이다. 섬 주민 여혜숙 씨(등대해양문화해설사)는 “부드러운 곡선의 해안과 초록빛 잔디, 바다가 어우러진 우도봉 때문에 잠시 놀러왔다가 40여년을 우도에서 눌러 살게 됐다”고 했다. 조선 중기 문필가인 김정도 “천년 비궁의 모습 깊은 바다에 잠겼다’며 우도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우도에는 ‘우도 8경’으로 불리는 8개의 빛나는 풍경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8개의 보석을 찾기 위한 우도 여행의 출발점은 뱃머리부터 시작된다. 배에서 바라보는 우도의 경관부터 일대 장관을 이룬다 하여 전포망도(前浦望島)라 했다. 배가 하우목동항에 도착하면 불과 5분 거리에 동양 유일의 홍조단괴해빈(紅藻團塊海濱)이 있다. 한자말이라 얼핏 들으면 무슨 말인지 짐작하기도 어렵지만 붉은 색을 띠는 바다 식물들이 바위에 달라붙어 퇴적물을 이룬 것을 말한다. 자연과 시간이 오래 교감하며 만들어낸 놀라운 조각 작품인 셈이다.

해빈지역 밑으로는 길게 백사장이 펼쳐진다. 연인들이 서로를 찍어주며 걸어가는 백사장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모래사장이다. 모래는 너무 하얘서 푸른빛이 감돌 정도다. 여기가 바로 우도의 두 번째 보석인 서빈백사(西濱白沙). 천진항 끝으로는 날이 밝으면 한라산의 장엄한 모습이 펼쳐진다. 우도 사람들은 이를 천진관산(天津觀山)이라고 했다.

우도의 백미는 역시 우도봉이다. 정상이라야 132m에 불과하지만 거기까지 펼쳐진 빛깔 고운 잔디와 우도봉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한파에도 잔디는 다 죽지 않고 아직 파릇한 절개를 간직하고 있다. 봄이면 빛깔 고운 푸른 잔디가 깔려 있어 지두청사(地頭靑莎)로 불린다. 정선우 감독의 영화 ‘화엄경’을 여기서 찍었다.

칼바람 속에도 우도봉으로 오르는 이들이 제법 많다. 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가득 바다가 담겨오고 뒤편으로 마치 석편처럼 오랜 세월 풍파에 깎인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후해석벽(後海石壁)이다. 우도봉 바로 아래 세 마리의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사실 우도라는 말이 소에서 유래했음에도 우도를 처음 밟은 짐승은 소가 아닌 말이었다. 순조 23년인 1679년 유한명 제주목사가 당시 말 150필을 우도에 하사해 처음엔 자연방목 상태로 사육했다. 이후 국유목장으로 국마를 관리사육하면서 목자들이 이곳을 통해 왕래했다.

우도봉에 연한 언덕에는 우도 등대와 등대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고전적인 창문이 돋보이는 우도 등대는 1906년 무인등대로 출발해 97년간 불을 밝혀오다 2003년 새로운 등대에 그 자리를 넘겨줬다. 2006년 우도 등대 100주년을 맞아 복원된 등대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현재 우도 등대 주변에는 등대공원이 조성돼 신화에 등장하는 파로스 등대, 상하이항의 마호타 파고다 등대 등의 모형이 모여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우도의 또 다른 명소는 한낮에 달을 볼 수 있는 우도봉 남쪽 기슭의 해식동굴. 오전 10~11시에 달이 뜰 리 없지만 동굴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동굴 천정에 반사되는데 그 동그란 무늬가 달처럼 생겼다 해서 달그린안 혹은 주간명월(晝間明月)이라고 한다.

우도봉 영일동 앞 동굴 바닥엔 시커먼 모래가 가득하다. 모래도 검고 바위도 검다고 해서 검멀레 해변이라고 한다. ‘검’은 ‘검다’의 준말이고 ‘멀레’는 ‘모래’가 와전된 것이다. 검멀레해수욕장에는 소의 콧구멍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검은 코꾸망’이라는 수중 동굴이 있다. 밀물 때는 동굴의 윗부분만 보이지만 물이 빠지면 동굴이 나타난다. 검은 코꾸망을 지나면 또 하나의 동굴이 나타난다. 동굴 내부가 온통 붉다 하여 ‘붉은 코꾸망’이라 하고, 여기에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동안경굴(東岸鯨窟)’이라 부른다. 겉에서 보기에도 별로 커보이지 않는데 막상 동굴에 이르니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허풍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보면 해녀들의 거친 ‘숨비소리’를 느낄 수 있다. 우도 해녀들은 우도를 기름지게 가꿨고, 일제 침략기엔 앞장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우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밤이 되면 고기잡이 어선이 무리를 지어 바다로 출항한다. 그때 비추는 빛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현란해 야항어범(夜航漁帆)이라 했다. 이것이 우도의 여덟 번째 보석이다.

◆여행팁

제주공항에서 성산포 선착장까지 차로 이동한 뒤 배를 타고 하우목동항이나 천진항에 내려서 우도를 돌아보면 된다. 성산포에서 우도까지는 약 3.8㎞. 배로 15분 정도 걸린다. 오전 7시30분부터 운항이 시작되며 우도에선 오후 5시(1~2월)에 마지막 배가 떠난다. 도립공원 입장료 1000원(어린이 500원), 뱃삯, 터미널 이용료를 합쳐 왕복 5500원. 차량을 가지고 섬에 들어갈 경우 중소형 승용차 기준으로 왕복 2만3000원(경차 1만8600원). 2시간 기준 2만원. 보물섬 레저(064-782-7744)

걸어서 일주하고 싶다면 올레 1-1코스를 이용하면 된다. 천진항에서 홍조단괴해수욕장 등의 바닷길을 거쳐 검멀레해수욕장과 우도봉을 돌아 천진항에서 끝나는 15.9㎞ 코스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로뎀펜션(064-782-5501)이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제주=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