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태양이 기우는 아테네에서의 배심재판
“누가 내 등잔의 심지에서 불을 붙여가더라도 불은 줄어들지 않는다. 관념은 자유롭게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자연이 준 특이하고도 자비로운 선물인 것이다. 구석구석 비추며 사방으로 퍼져가는 빛처럼, 우리가 그 속에서 숨쉬고 존재하는 공기처럼, 자연은 배타적인 소유나 제한이 없도록 우리의 관념을 만들었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1813년에 쓴 편지 글이다. 아름다운 글이다. “등잔 위에서 빛나는 불빛과 같아서….” 그는 이런 논리로 인간의 지식에 재산권(IP)을 설정하는 데 반대했다. 미국은 당시만 해도 산업화 후발 주자였다. 영국 등에서 기술을 훔쳐오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였다. 그러나 제퍼슨의 이런 주장을 지금의 미국인이라면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인도 전혀 다를 것이 없다. 하나의 지식이 그것에 대한 경제적 가치의 보장을 통해 인류 보편의 지식으로 승화되듯이 개인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바꾸어 주는 장치가 바로 지식재산권이라는 사실을 한국인은 잘 알고 있다.

[정규재 칼럼] 태양이 기우는 아테네에서의 배심재판
지재권 자체는 시비도 회피의 대상도 아니다. 미국 새너제이의 지방 법정에 불려 나온 배심원들의 애국심도 마찬가지다. 누구라도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새너제이라는 아름다운 도시 밖의 일은 관심도 없는 그런 애국적이며 선량한 시민들이었을 것이다. 특수 관계인은 제외되었다고 하지만 매일 애플 본사 빌딩을 쳐다보고 잡스의 죽음을 애도했던 이웃들이다. 고급품은 미제요 저가품은 중국제라는 차원이라면 누구의 스마트폰이라도 애플을 베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단시간 내에 수백개 항목을 평가하고 항목마다 결론을 내리고 피해금액을 산정하는 속전속결이 가능했던 거다. 굳이 디자인뿐이었던 것이 신기하다. 그것이 배심원단이 자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계점이었을 것이다. 배심원들에게는 모욕적인 지적이겠지만 그게 지금 우리 모두가 직면한 기술시대의 진면목이다. 솔직히 말해 몇 가지 기술은 복제 여부는 고사하고 이해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제이 심슨의 피흘린 장갑조차 판별하지 못했던 배심원 아니었나. 그래서 새너제이의 배심원들이여. 아이폰과 갤럭시를 뒤섞어 놓고 단 한 개라도 구분하지 못해 혼동을 일으킨 경우가 있다면 역시 애국심에 눈먼 한국인들에게 말해 달라. 애플의 각진 옆면과 온통 곡선인 갤럭시를 혼동하는 시민이 있다면 역시 말해 달라. 아이폰의 딱딱한 금속성 패널의 옆면과 갤럭시의 그것이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정상인가. 동양인은 모두 찢어진 눈의 복제품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집안의 가구들이며 구식 전화기며 TV상자 등 사람이 만지는 허다한 물건 중에 대체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지 않은 제품이 있으면 보여달라. 사무실 탁자는 또 어떤가. 새너제이 법정 발언대와 주사위의 육각 모서리는 또 어떤가.

아마도 삼성 측 변호사들의 전략 실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소니 등의 선행 디자인들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던 것도 그렇다. 아니, 이번 사건은 지재권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배심재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동네 재판이 다룰 지역 범죄의 문제가 당초부터 아니었던 것이다. 영국과 독일과 일본 네덜란드 등 9개국에서 벌어지는 전문가들의 송사다. 디자인은 아예 송사거리도 안 되었다. 이것이 새너제이 시민 9명에 의해 뒤집어졌다. 미국의 자부심인 배심재판 제도는 지금 그렇게 빛을 잃고 있다.

문제의 광역성과 이해관계의 지역성이 충돌하고 있는 꼴이다. 지재권의 발생지는 플로렌스라도 좋고 피렌체라도 무방하다. 그러나 배심재판은 아테네 기원설밖에 없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BC 399년의 소크라테스 평결이다. 501명의 배심원이 일당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1차 평결에서 무죄라고 했던 배심원 중 80명이 2차에서는 사형으로 돌아섰다. 죄가 없지만 죽이라!는 배심재판은 태양이 기우는 시간에 일어났다. 미국 재판 제도의 과도한 자부심이 초래한 결과일 수도 있다. 도시락 조리사와 사회복지사와 영업직 회사원과 전기기사와 자전거숍 매니저와 시청직원인 이들은 애플과 갤럭시의 디자인을 구분할 수 없었다고 평결했다. 호미를 들고 달려왔던 아테네 농부처럼.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