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은 말이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그린 건 구체적인 대상의 자연이 아니라 선과 면, 색채들로 구성된 추상 형태의 자연이다.”

평생 명예와 권력, 돈을 모르고 아티스트로만 살다 간 유영국 화백(1916~2002)의 ‘추상 예술론’이다. 식사 시간만 빼고 공장 노동자처럼 작업시간을 지켰던 그는 한국화단에 추상미술의 씨앗을 뿌린 대가다.

일본 도쿄문화학원에서 유화를 공부한 그는 1937년 일본 추상미술 재야운동단체인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작품을 처음 발표한 후 덕수궁미술관에 마지막 신작을 내놓은 2000년까지 60여년간 추상회화의 외길만 걸었다.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2년씩 교수로 재직했지만 작업에 방해가 되자 교단을 떠났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9년 예술원 회원이 된 후 예술원상과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과 갤러리 현대(대표 조정열)가 18일부터 내달 17일까지 펼치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10주기’전에서 그의 예술정신을 느껴볼 수 있다. 갤러리 현대가 박수근 장욱진 김환기에 이어 기획한 ‘한국 현대미술 거장 재조명’의 네 번째 전시다. 이 전시에는 엄격한 구획선으로 색면을 나누는 1950년대 초기 작품부터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 작품, 2000년대 ‘산’을 중심으로 한 기하학적 색면 추상화까지 그의 대표작 60여점이 나온다.

그는 ‘산의 화가’로 불릴 정도로 우리 고유의 넉넉한 산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주위에 산이 많은 고향 울진의 풍경을 모태로 1955년 ‘산이 있는 그림’을 처음 선보이면서 대자연의 복합적인 조형요소를 어떻게 단일화하느냐에 집중했다. 1960년대 ‘서정적 추상’, 1970~1980년대 ‘기하학적 추상’으로 진화하면서도 선 면 색채의 조화를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산에 투영했다.

그의 색면 추상화는 원만하고 막힌 데가 없다. 전성기의 추상적 그림들은 커다란 캔버스를 바탕으로 확장하거나 진동하는 듯하다. 삼각형 색면들을 부유하는 산의 형상으로 병치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말년으로 갈수록 화폭은 점점 화려해졌다.

미술평론가 이인범 상명대 교수는 “끈기 있게 다듬은 색면 작품들은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작가의 정열적인 감성을 색깔로 승화해낸 자연”이라며 “그 속에서 배어 나오는 듯한 광휘에 찬 색채가 체온을 뜨겁게 감돌게 한다”고 평했다.

유 화백은 아침 8시에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고 술을 마시면 그림을 안 그리는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하다. 그는 생전에 “술을 마시고선 절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이 나의 성미이며 버릇이다. 하루 여덟 시간 정도 아침과 낮에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막내아들인 건축가 유건 씨(59)는 “1940년대에 어부였던 아버지는 6·25 직후엔 고향 울진에서 선친에게 물려받은 양조장을 운영했지만 곧바로 그만두고 그림을 시작했다”며 “권력이나 돈, 그 밖의 어떤 세속적 가치에도 종속되기를 거부하며 미술에만 집중한 부친의 직업관을 존경한다”고 전했다.

유 화백의 그림값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과 함께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1983년 신세계미술관 개인전에서 작품 가격을 당시 국내작가 중 가장 비싼 호당 80만원에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8년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100호 크기의 색면 추상화 ‘무제’가 5억원에 낙찰돼 자신의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올해 경매에서는 유화 작품 3점이 출품돼 모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조정열 대표는 “이번 전시는 이념적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한 유 화백의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하면서 우리 근현대 미술사에서 한국적 추상이 어떻게 태동했고 발전했는지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유 화백의 대표작 100여점을 정리한 국영문 화집 《마로니에 북스》도 나왔다. 오는 25일 오후 2시에는 이인범 교수가 ‘유영국의 삶과 추상 예술-자유정신과 자연을 향한 랩소디’를 주제로 특강한다. (02)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