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中企 잡는 율촌산단…"준공 늑장에 부도날 지경"
해저유전 장비업체 TMS중공업 옥기동 대표(47)는 요즘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최근 네덜란드 및 노르웨이 업체와 총 350억원 규모의 장비수출 계약을 맺었는데 자금이 부족해 생산준비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옥 대표는 “지역 금융회사 대출 한도는 이미 꽉 찼고, 외국에서 투자를 받거나 산업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멀쩡한 中企 잡는 율촌산단…"준공 늑장에 부도날 지경"
문제는 간단히 풀릴 수 있다. 전라남도 광양만 율촌제1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공장부지 3만3000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공장등록증)를 하고 자산재평가를 받으면 된다. 이럴 경우 재무제표가 좋아져 투자도, 대출도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로 예정돼 있던 단지 준공일이 2013년 말로 늦춰지면서 공장등록증을 못받아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에 철구조물을 납품하는 유림산업(대표 전서현)도 같은 고민거리를 갖고 있다. 임용철 유림산업 상무는 “공장등록증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자금조달 비용은 높아지고, 차입한도는 늘리지 못하고, 계약보증서도 못 쓰는 ‘3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TMS중공업이나 유림산업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철구조물을 제작하는 (주)CKC(대표 최승현)은 준공 지연으로 인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달 최종 부도를 냈다. 이 회사에 보증을 섰던 계열사 파스코도 현재 자금난으로 정상조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광양만 율촌제1산업단지 입주 기업들이 아우성이다. 업황 부진에다 산단 준공 연기에 따른 소유권 이전 지연, 이에 따른 자금조달 문제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생존 기반이 흔들린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94년 첫 삽을 뜬 율촌제1산단은 당초 2010년 말 준공 예정이었으나 설계 변경 등으로 준공일이 2011년 말, 2013년 말로 계속 늦춰지고 있다. 2006년 최초 입주한 기업 입장에선 5년째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입주기업 단체인 율촌산단협의회 최상종 부회장은 “60개 입주기업 중 22개 중소기업이 준공 지연에 따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4~5개 업체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 있는 만큼 서둘러 소유권이전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지난 6일 관할관청인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의 최종만 청장을 만나 “이미 분양대금의 90%를 납부한 만큼 나머지 대금을 내고 조기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선별적 등기이전에 부정적이던 최 청장도 “단지를 제대로 만들다 보니 설계 변경도 있었고 대금도 오르게 됐다”며 “가급적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경제자유구역청은 분양대금을 완납한 기업에 한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먼저 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물가 상승과 단지 설계 변경 등으로 분양대금이 그 사이 당초 3.3당 39만원에서 46만~47만원으로 20% 오른 것. 조선용블록 운반차량 제조업체인 라인호의 박경희 상무는 “기업유치 때는 분양가가 올라봐야 3% 이내라고 공언했는데 이제 20%나 더 내라고 한다”며 “인상 요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수억원씩 대금을 더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하고 있다.

협의회와 경제자유구역청은 △분양가 인상 상세내역 공개 및 재조정 △인상분 납부방법(현금 또는 보증증권 발행)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수=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