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 다산→초의→추사…조선 茶문화 만개
우리나라 차(茶) 문화는 1000년이 넘는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 꽃피웠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잊혀졌다가 18세기 들어 새로 살아났다고 한다.

정민 한양대 교수가 쓴 《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김영사, 3만5000원)는 다산, 초의, 추사 세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차 문화사를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부안현감 이운해(1710~?)의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부터 진도에 유배온 이덕리(1728~?)의 ‘동다기’에 이르는 시기를 조선 후기 차 문화사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부풍향차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차 책자. 초의가 ‘동다송’에서 인용한 동다기는 다산이 쓴 것으로 오인됐던 기록이기도 하다.

차 문화의 중흥조는 다산 정약용이다. 저자는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초의 선사와 혜장 스님에게 차를 가르쳤다고 설명한다.

다산이 만덕산 백련사에 놀러갔다가 야생차가 많은 것을 보고 혜장에게 차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고, 1809년 24세의 초의가 48세의 다산을 찾아 배움을 구하면서 제다법도 전수받았다는 것이다.

차 문화는 다성(茶聖)으로도 불리는 초의에 이르러 만개했다. 스물 네살 때 다산을 찾아 교류한 초의의 차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때는 1830년께다. 스승의 사리탑 기문을 받기 위해 예물로 들고 온 ‘보림백모 떡차’가 히트를 쳤다.

스승 신위가 초의를 ‘전다박사(煎茶博士)’로 치켜세웠고, 정조의 외동사위 홍현주까지 나서면서 초의가 ‘동다송’을 짓고부터 명성을 따를 사람이 없게 됐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초의의 차를 가져다 마셨던 추사 김정희와의 교류도 재미있게 읽힌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