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비관말라…노력·모험 안하고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젊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꼭 알아야 할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청년들과의 대담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소설가 복거일 씨(65)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경제의 대표적 신봉자이자 ‘우파의 순수 지성’이라 불리는 그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설명으로 대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얘기의 핵심은 경쟁은 불가피한 것,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 패자를 구제하기 위해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시장경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존망의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으로 요약됐다. 사회제도나 남 탓을 하기에 앞서 사회와 경제의 흐름, 역사에 대한 보다 많은 탐구와 학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함부로 비관말라…노력·모험 안하고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황언종=취업이 안 돼 졸업을 미루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도 곧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야 하는데 국내외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뉴스를 볼 때마다 걱정이 커집니다.

▶복거일=지금 여러분들이 만나는 세상만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려움은 늘 있었습니다. 저희 세대가 젊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우리 때는 일류대학을 나와도 절반밖에 취직을 못 했어요. 그때는 지금의 대기업 같은 직장 자체가 거의 없었죠. 기성세대와 비교하면 지금 세대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세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사실을 체감하지는 못하죠. 과거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만 보면서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늘 부족함을 느끼고 불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조호현=그래도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줄어든 것은 사실 아닐까요. ‘88만원 세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복거일=그게 현실이긴 하죠. 우리 사회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부분이고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인간이 갖고 있는 욕구나 욕망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보다 경제여건이 훨씬 좋아져 모두 정규직이 된다고 해봅시다. 그래도 모두가 행복해지진 못합니다. 나라가 돈을 대줘서 모두 박사학위를 딴다고 생각해보세요. 또 다른 경쟁이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현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더 높은 위치의 자리를 얻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체제라도 피라미드 밑단에 있는 사람들은 나오고 그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 공산주의고 북한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요. 전혀 평등하지 못하고 더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희진=그래도 지금처럼 양극화가 심한 것은 문제 아닙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박탈감은 어떡하고요.

▶복거일=경제가 성장하면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현상입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 큰돈을 벌 기회가 생깁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뭘 한 게 있나요. 아이디어 하나로 돈 번 것 아닙니까. 야구선수 이대호를 보세요. 타율이 이대호 선수의 절반인 선수는 연봉이 이대호의 절반이 아니라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넥슨, 네이버 창업한 사람들도 수조원씩 돈을 벌었어요. 소득 불평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시장경제시스템은 그런 거예요.

▶조민정=그럼 가난한 사람들은 영원히 고통받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복거일=가난 구제는 어떤 사회도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가 성장해 예전 같으면 탈락해서 사라질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과 다양한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복지제도가 시장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혼동하면 안 됩니다. 시장 본연의 임무는 가장 나은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꾸려가도록 하는 것이지 약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성장해서 생겨난 여유로 소외된 계층들을 돌보는 게 맞습니다.

▶김희진=그렇다면 시장경제체제가 너무 냉혹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부의 역할 중 하나도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있는 것 아닙니까.

▶복거일=야박하게 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삶의, 사회 질서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따뜻한 시장경제’라는 말은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겁니다. 실패도 봐줘야 한다? 그건 시장을 비효율적으로 바꾸자는 얘기입니다. ‘세금 줄여달라’ ‘가난한 사람들 혜택 더 늘려달라’ ‘등록금 낮춰달라’고 하면 정치인들은 옳고 그른 것을 가릴 틈도 없이 그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경제는 더 나빠져요. 사람들이 생산적인 곳에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높이는 데 쓰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나눠 가질 파이가 작아질 수밖에 없지요.

▶김송욱=저희 세대를 위한 인생의 ‘팁’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복거일=제가 자랄 때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에 고도성장을 질주하던 시기여서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런 시절과 비교하면 여러분들은 유복한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든 원숙기에 접어들면 퇴행적인 양태들이 나타나요. 그런 데 쉽게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경제가, 소득수준이 좋아졌으니 ‘적어도 이 정도의 혜택은 받아야겠다’는 심리 말이에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에요. 미국 유럽 다 그래요. 하지만 노력과 모험은 게을리하면서 사회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의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공부하고 또 공부하세요. 함부로 비관하지 마세요. 세상은 열려 있고 기회는 무궁무진해요.

◆복거일은…

대한항공 입사 사흘만에 남녀차별' 항의하다 퇴사…'우파의 순수지성' 평가

복거일 씨는 1946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대전 우송고와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은행, 제조회사, 무역회사 등을 잠깐씩 다니다가 1975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하지만 신입사원 연수 때 남자 고교 졸업생이 여자 대학 졸업생들과 월급이 같다는 사실을 알고 인사부서에 그 부당성을 항의하다가 사흘 만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 당시 그는 동료 여성 사원들에게 “명백한 남녀 차별이다. 여성 동지들, 이것을 보고도 분개할 줄 모른다면 앞날이 캄캄하다”며 ‘궐기’를 호소했다고 한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 뒤 실업자가 돼 10년은 족히 고생했다”며 웃었다. 2006년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문화미래포럼을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1987년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출간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꾸준한 집필활동으로 50권 이상의 소설과 수필집 등을 출간했으며 지난달에는 ‘보수는 무엇을 보수하나’라는 책을 내는 등 지금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