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언어 속에 숨은 유전자는?…문화적 차이
[책마을] 언어 속에 숨은 유전자는?…문화적 차이
열대지방 사람들은 자음을 대부분 흘려서 발음한다. 그들이 얼마나 느긋하고 게으른지를 잘 보여준다. 거친 스페인어와 부드러운 포르투갈어를 보면 이웃한 두 나라의 문화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다.

독일어의 논리적인 문법은 심오한 철학적 사상까지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어는 우아하고 낭만적이다. 영어는 규칙적이고 활기차고 사무적이며 명료하다. 반면 호주 원주민인 구구 이미디르어에는 왼쪽과 오른쪽은 물론 앞과 뒤 등 방향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좌회전 하시오' 대신 '동쪽으로 도시오'라고 말한다. 아마존의 마치스족은 사건이 얼마나 오래전에 발생했는지에 따라 크게 세 가지의 과거형이 존재한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죄와 벌을 구분하지 못했다. 상반된 두 개념을 가리키는 단어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우리는 모국어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를 인지한다. 그렇다면 어떤 모국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달라질까.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말한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화성인의 눈으로 지구인의 언어를 관찰해보면 모두 똑같아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어는 본능이기 때문에,즉 언어의 토대는 우리 유전자에 코딩돼 있기에 모든 인류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똑같으며,우리가 쓰는 각각의 언어는 방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곳은 소,와인,바다가 모두 빨갛다》의 저자는 촘스키를 비롯해 오늘날 지배적인 언어학적 견해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영국 맨체스터대 명예연구교수인 그는 "언어에는 문화를 반영하는 어떤 심오한 차원이 존재하며 언어가 다르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생각도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언어권의 사례와 언어학 이론을 통해 언어와 생각,언어와 문화의 함수관계를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가령 언어마다 특정 정보를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떤 정보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할지에 대한 지침을 주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나는 어제 저녁을 이웃과 함께 보냈다"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에서는 이런 질문이 불필요하다. 이웃에 해당하는 말을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하나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도 성별 정보를 표시해야 한다. 영어에서 이웃의 성별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해도 사건이 일어난 시제는 밝혀야 한다.

반면 중국어는 하나의 동사 형태로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표현할 수 있어 시제는 그리 중요치 않다. 이러한 차이가 화자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돌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봤을 때 우리는 이를 두 가지 별개의 개념으로 구분해 표현한다. '돌'이라는 대상과 '떨어진다'라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하지만 밴쿠버섬에 사는 누트카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사건을 묘사한다. 누트카말에는 '떨어지다'라는 기본적인 동사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대신 돌이라는 말에 특별한 성분을 붙여 '돌 아래로'와 같이 묘사한다. '비가 온다'는 영어 표현 'It rains.'도 비슷한 방식이다. 비가 오는 사건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영어와 한국어는 큰 차이가 있다.

그는 "모국어의 진정한 영향력은 특정 표현방식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형성되는 습관"이라며 "화자가 입을 열거나 귀를 열 때마다 세상의 특정한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강요한다면 그러한 언어적 습관은 마음속에 자리 잡아 결국 기억이나 인식, 연상, 심지어 실질적인 기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