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 에어스(우피 골드버그)는 월가의 유능한 투자분석가. 당연히 제 몫인 줄 알았던 부사장 자리가 남자 부하인 프랭크에게 돌아가자 사표를 던지고 직접 투자자문회사를 차린다. 그러나 그간의 실적과 탁월한 기획에도 불구,여성 CEO인 그에게 투자하려는 사람은 없다.

지쳐가던 그에게 프랭크의 비서였던 샐리가 찾아와 큰손과의 약속을 잡아준다. 다짜고짜 남성 파트너가 누군지 묻는 큰손에게 로렐은 '미스터 커티'라고 답한다. 때마침 위스키 커티삭이 보였던 것.돈 많은 백인 남성이 뒤에 있다는 말에 투자자는 몰리고,사업은 번창한다.

할리우드 영화 '미스터 커티'(1998년)를 보면 미국에서도 여성의 임원 승진과 창업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경제전문지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여성 CEO가 이끄는 곳은 15개사,여성 임원은 15.7%에 이른다. 현재 세계에서 여성 임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노르웨이.2003년 기업법을 개정,600여개 공기업과 상장기업 이사의 4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권고한 데 이어 2006년엔 아예 의무화함으로써 2008년 주요 기업 여성 임원이 40%를 넘어섰다.

유럽연합(EU) 의회 또한 지난 7월 '여성 임원 쿼터제' 도입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10% 정도인 EU 내 대기업 여성 임원을 40%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다. 우리 현실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질렀음에도 불구,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직원 비율은 23%고,관리직은 7.1%,임원은 1.1%에 불과하다는 마당이다.

입사 성적은 대부분 여성이 우수하다는데도 "남자가 대리 될 때 여자는 사표 쓰고,남자가 사장(社長) 될 때 여자는 사장(死藏)된다"는 게 현실이다. 신입사원 증가에도 불구,차장 이상 팀장으로 승진하는 여성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여성도 최고경영자(CEO)가 돼야 한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언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여성의 승진을 막는 요소는 많다. 육아 부담은 물론 감정 컨트롤과 조직 전체를 생각하는 희생정신 취약도 문제로 꼽힌다.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불안한 까닭이다. 여성 인력 활용 없이 경쟁력 강화는 없다. 이 회장의 의지가 국내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여성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앞서야 하는 것도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