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치여 공부할 시간이 부족할 테니 당분간 본전(本殿)에 나오지 마라.대신 집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 성과를 내도록 하라." 1426년 세종은 집현전 학자 권채 신석견 남수문 등에게 어명을 내렸다. 휴가를 줘 독서에 전념하도록 한 사가독서(賜暇讀書)제다. 짧게는 몇 달,길게는 3년까지 집이나 한적한 절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했다. 비용을 대준 것은 물론 음식과 옷까지 내렸다. 훌륭한 임금은 뭐가 달라도 달랐던 것이다.

영국 글라스고대의 저명한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 교수는 어느날 조수의 안색이 나쁜 것을 알아차렸다. "자네 건강이 심상치 않군.내가 처방전을 써 줄테니 그대로 따르게." 조수가 집에 가서 처방전이 든 봉투를 뜯어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연의 회복력과 휴식.8일간 복용하라.'우리 주변에도 이런 상사가 더러 있을 게다. 사장이 먼저 휴가를 갔다 와서 전 직원이 맘 편히 쉬도록 하는 회사도 꽤 생겼다고 한다. 의무휴가제를 도입하는 곳도 늘어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은 일부다. 밀린 일 처리하랴,윗 사람 눈치 보랴 법정 휴가 일수도 다 못쓰는 경우가 더 많다. 차 막히고 물가 비싼 휴가지에서 복작대느니 시원한 사무실이 더 낫다는 '휴가 반납족'까지 있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해 세계 24개국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온전한 휴가 사용' 조사에서 한국은 53%만 "그렇다"고 대답해 21위에 머물렀다. 1위는 단연 프랑스로 89%의 근로자가 "모두 쓴다"고 답했다. 아르헨티나가 80%로 뒤를 이었고,헝가리 영국 스페인 독일 벨기에 터키도 70%를 넘었다. 중국은 65%,미국은 57%였다.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댄 모습이다. 일하다가 잠시 나무 아래서 쉰다는 뜻이다. '좋다''아름답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반가운 소식을 휴문(休問)이라 했다. 허구한 날 쉬라면 그런 고역이 없지만 일하다가 잠시 얻는 휴가는 누가 뭐래도 꼭 필요한 것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바쁜 데 웬 휴가?"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생각할 일이다. 특히 직원들 휴가에 인색한 상사들은 마음 고쳐 먹기 바란다. 마음 편히 쉬어야 일도 잘할 게 아닌가. OECD 국가 중 우리의 일하는 시간이 가장 긴 반면 생산성은 하위권인 것도 제대로 쉬지 못한 탓일지 모른다. 열심히 일했다면 눈치 볼 것 없다. 떠나라.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