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정가 움직임이 긴박하다. 의회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증액을 승인해 디폴트(채무불이행)사태를 막을 것이냐,아니면 사상 초유의 디폴트 선언으로 내몰릴 것이냐의 갈림길에 있어서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몰아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는 터지기 직전이다. 그리스는 이미 선별적 디폴트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질서도 예측 불허다.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급팽창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필리핀 등과 벌이는 난사군도 영유권 분쟁은 갈수록 공세적 양상을 띠고 있다.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원전 폭발로 도호쿠(東北)지방이 초토화된 일본의 향후 움직임도 주요 변수다. 3대 권력세습을 벌이고 있는 북한의 추가 무력도발 가능성은 한반도 평화에 커다란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계 정세는 어떤 맥락에서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까.

앞으로 10년간의 세상 변화를 들여다본 단기 예측서 《넥스트 디케이드》를 참고할 만하다. 미국의 유명 국제정세 분석가인 조지 프리드먼이 다가올 10년간 세계 각지에서 펼쳐질 지정학적 힘의 구도를 예측한 책이다. 프리드먼은 미국 군사정치 분야의 싱크탱크인 스트랫포의 설립자이며 최고경영자다. 그는 미국과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적인 정치 · 경제적 상황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해 지배력을 유지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부문이 아니라 지정학적이고 정치학적인 부문에 의미심장한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한다. 자국의 금융과 통화체계를 통제할 힘이 없는 나라는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국가 권력의 강화와 '경제국가주의(economic nationalism)'현상이 뚜렷한 시대적 특성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한반도 주변 정세와 관련,"중국이든 일본이든 다가올 10년 동안 지역의 패권국가로 부상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의 대중,대일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으로서는 최대 시장을,일본으로서는 '시 라인(해상교통로)'을 잃을 수 없다는 게 그런 판단의 근거다. 결국 중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으로 서로 다른 단계에 있는 이 두 나라가 균형을 잡게 하는 수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는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예측한다. 10억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이 절대빈곤 속에 살고 있으며 점증하는 임금 상승 압박,높아지는 실업률 등도 억누르기 힘든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회복력이 강한 나라로,쓰나미 역경을 잘 극복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은 1990년대에 버블붕괴를 경험했지만 평생고용 전통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지탱했다. 절대빈곤 인구가 없고 필요하다면 초긴축정책도 견딜 수 있는 사회기반이 강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해상교통로의 상실 등 국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위기에 맞닥뜨리면 공격적으로 변할 여지가 많다고 우려한다.

그는 향후 10년간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본과 중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미국을 필요로 하며,미국도 중 · 일 견제의 선택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에 의존할 것이란 얘기다. 이 지역 힘의 균형이 무너져 무력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호주,싱가포르와 함께 핵심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의 위협은 논외로 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남북통일이 핵심 사안이 아니란 전제 아래,북한은 불구상태이며 핵시설 또한 다른 국가들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도가 10년 이내에 무시 못할 힘을 지닌 국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도의 경제는 성장할 것이지만 그 힘이 바다로 확산되도록 하지는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키스탄과의 세력균형에 치우치도록 함으로써 힘을 내륙에 묶어두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본다.

그는 또 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허덕이고 있다며 끊임없이 탈출구를 모색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러시아와 독일의 협력,프랑스와 독일의 갈등,경제력이 취약한 회원국들의 위기로 인해 유럽연합이 정점을 지나 분열의 시기로 접어들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